[폴라로이드 고양이] 003. 고양이 같은 친구 맨몸으로 차가운 바다에 내던져진 것처럼 슬픔이 목까지 차올라 숨쉴 수 없을 만큼 힘겨운 날, 고양이처럼 말없이 다가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와 많이 다른 사람, 때론 '쟤 참 이상하다' 여겼던 사람, 내가 울적할 때마다 썰렁한 농담 시리즈를 이것저것 주워섬기다,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으면 드디어 웃겼다며 뿌듯해하는 사람. 마음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쁘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 그런 친구가 있습니다. 일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 더 이상 일어나 싸우기가 힘들어서 차라리 그대로 잠들어 눈을 뜨고 싶지 않을 때도, 묵묵히 어깨 두들기며 위로해주는 사람. 슬픔의 무게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눠지는 사람, 함께 있는 순간의 침묵을 불편히 여기지 않고 즐.. 2010. 5. 29. 호기심 많은 길고양이의 돌출행동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어린 길고양이는 가끔 예측 불가능한 돌출행동을 합니다. 이날도 촐싹거리며 고양이 아줌마 아저씨에게 덤벼들어 놀자고 귀찮게 하다가, 별 호응을 받지 못하니 슬그머니 자리를 뜹니다. 보통 잰걸음으로 제 곁을 슝슝 빠져나가곤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생각했습니다만... 헉,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만 카메라 렌즈에 얼굴을 바짝 들이댑니다. "아줌마, 뭐해요? 이건 왜 자꾸 내미는 거예요?" 고양이의 천진한 눈망울이 이렇게 말하는 듯하네요.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초점은 저멀리 안드로메다로... 눈높이를 고양이에게 맞춰서 납작 엎드려 있었더니, 사람은 잘 보이지 않고 카메라만 유독 고양이 눈에 도드라져 보여서 궁금했나 봅니다. "에이, 별 것도 없고만..." 심드렁해진 어린.. 2010. 5. 28. 둥글넙적한 길고양이 얼굴, 볼수록 매력 조금은 험상궂은 외모에, 두툼한 살집까지 두목의 포스를 풍기는 길고양이. 저는 두목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 지역을 오랫동안 차지하고 살며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고양이에게는 어울리는 별명이라 생각해요. 보통 고양이는 얼굴이 역삼각형을 기본으로 양 볼에 살이 붙은 모습이지만, 두목냥은 고양이과 동물의 얼굴 윤곽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둥글둥글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제게 눈을 살짝 찌푸려주며 "얼른 가라!" 하고 엄포를 놓지만 제 눈에는 귀엽기만 한데요. 그래도 저보다 더 어른(고양이 나이를 환산하면 장년층으로 추정)이니 마냥 귀여워할 수만도 없겠네요. 아저씨의 자존심이 있으니까요. 두목냥의 둥그런 얼굴은 정면에서 보았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답니다. 완전히 동그란 모습이면 앳된 느낌이 들지만, 아래위로 슬.. 2010. 5. 28. 늦잠 자다 깬 길고양이, 심통난 얼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는 시간, 늦잠자던 길고양이도 일어나 활보하기 시작할 무렵이건만, 이 녀석은 어젯밤 열심히 달렸는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장독대 뒤편은 발길이 드물어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을 걸로 믿고 은신처로 삼은 모양이지만, 그래도 사방이 트인 곳이라 완벽하게 몸을 숨길 수는 없는데 너무 태평합니다. 그래도 예민한 고양이 귀는 늘 열려 있어서, 작은 바스락 소리에도 귀가 쫑긋 서고 눈이 번쩍 떠집니다. 의외의 장소에서 눈이 마주치니, 몰래 풀밭에 실례하다 들킨 사람처럼 뻘쭘해하는 것이 느껴져서 귀엽습니다. 고양이 귀는 마징가 귀가 되고, 표정도 샐쭉해졌네요. 고양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아 뭐야~ 한 두 시간 더 자도 되는 거였는데..." 하고 제게 내심 불.. 2010. 5. 27. 길고양이를 위한 '특별한 찻집'의 사연 배고픈 길고양이들이 찾아왔을 때 바로 확인해 대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연히 상상했던 길고양이 전용 인식장치를 실제로 운용 중인 찻집이 있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아담한 찻집 안에 들어서면, 꽤 큼직한 우체국 택배상자가 바닥에 놓여있습니다. 가게 입구에 웬 택배 상자인가 싶어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면, 삼색고양이 한 마리가 단잠을 자고 있습니다. 찻집 앞에 상주하던 이 길고양이는 인근 식당에 출몰하는 쥐를 모조리 잡아주어 이웃 주민에게 두루 사랑을 받았답니다. 그러나 크게 앓아 동물병원 신세를 진 뒤로 그냥 거리에 놔둘 수 없어서, 찻집을 운영하던 사장님은 아예 가게 한켠에 보금자리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같이 놀아주면 좋으련만, 한참 낮잠 잘 시간이라 그런지 고양이는 그저 눈만 꿈뻑할 뿐 상자.. 2010. 5. 27. 내겐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 길고양이 옥상 물탱크 밑 그늘진 자리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고단한 몸을 누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제게 아무런 의미 없는 시멘트 벽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이 자리를 쉼터로 선택한 순간, 제 눈 앞에는 커다란 캔버스 하나가 놓입니다. 손톱만 한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고양이가 있는 풍경을 이리저리 담다 보면, 어느새 여러 장의 그림이 머릿속에 펼쳐집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오랫동안 그림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사진을 찍으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가늠선을 그려 풍경을 자르고, 상상 속의 캔버스를 가로로 눕혔다가 다시 세워서 그려보기도 합니다. 어떤 사진에서는 빛을 염두에 두고, 어떤 사진에선 색의 안배를 중시하고, 어떤 사진에서는 기하학적인 구도.. 2010. 5. 26. 이전 1 ··· 120 121 122 123 124 125 126 ··· 30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