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빼고 바라본다 스밀라가 방충망에 매달리다가 추락할까 싶어서 대개 창문을 닫아둔다. 그래도 환기는 시켜야 하니까 가끔 열긴 하는데, 창문 여는 소리가 나면 휙 뛰어올라서 최대한 방충망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다시 닫을 때까지 저렇게 망부석처럼 앉아 있다. 가끔은 창문을 닫으려고 하면, 못 닫게 하려는 것처럼 기를 쓰고 머리를 디밀어서 당혹스럽다. 평소에는 고집스런 면을 못 느끼겠는데, 자기 주장을 할 일이 있으면 꼭 하고야 만다. 그래봤자 몸이 작으니까, 두 팔로 번쩍 안아서 옮겨버리면 꼼짝 못하지만. 내가 고양이였다면, 매번 목적 달성을 제대로 못하고 끌려내려오는 상황이 내심 억울할 것 같긴 하다. 지금 스밀라가 앉은 자리는 예전에 소형 캐비닛을 놓았던 자리다. 한동안 스밀라의 전망대로 썼던 물건이지만, 책꽂이 꼭대.. 2006. 9. 25. 파도치는 뒷모습 스밀라가 창밖에서 내내 구슬프게 운다. 뭘 요구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2006. 9. 24. 스밀라의 새 둥지 스밀라의 새 둥지가 될 라탄 바구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탐색하고 있다. 가만히 보니 등에 난 줄무늬가 어쩐지 멧돼지를 닮았다는;;; 날이 갈수록 털 색깔이 짙어지는 스밀라다. 입구의 테두리를 따라가면서 코로 킁킁 냄새도 맡아 보고... 슈렉 고양이 눈매로 변신하기도 했다가... 깔개 한가운데 자리잡고 앉아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여기저기 구경해본다. 뭐 볼 것도 별로 없지만. 라탄으로 만든 둥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내 식빵 굽는 자세로 앉아 있었다. 지금도 저 안에서 자는 중. 2006. 9. 23. 보이지 않는 발바닥 고양이의 로망은 말랑말랑한 발바닥이라는데, 스밀라의 발바닥은 무성한 털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앞발을 붙잡고 헤집어야 초코 젤리가 보인다. 처음에는 발바닥에 때가 타서 그런 줄 알고 열심히 문질렀다는-_- 2006. 9. 22. 고양이의 속눈썹 고양이의 눈매는 짙다. 마스카라도 아이라이너도 필요가 없다. 하이돔 글래스 안구처럼 도톰하게 솟아올라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평소 보이지 않던 것도 새롭게 보인다. 보일락 말락 하는 앙증맞은 속눈썹도 그 중 하나다. 허리를 S자로 휘어 창밖을 보는 스밀라의 뒤태에 홀리고, 그 뒤로 비치는 하늘이 예뻐서 사진을 찍다가, 실루엣 속에 녹아든 스밀라의 속눈썹을 본다. 중력에 순응해 부드럽게 아래로 휘어지는 다른 부위의 털과 달리, 속눈썹은 기와지붕 처마처럼 완곡한 기울기로 하늘을 향해 살포시 들려 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만 발견할 수 있는, 가슴 설레는 속눈썹이다. 2006. 9. 20. 토끼잠, 고양이잠, 나비잠 며칠째 잠을 깊이 자지 못했다. 이런 날은 기분나쁠 정도로 심장이 빨리 뛴다. 어느 시점부터 이런 느낌이 익숙해져서, 이제는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대학생 때부터 밤새는 걸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변태인가-_-). 내가 다녔던 학교는 주변에 유흥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해서 '수녀원'이라고 불렸는데, 오후 11시만 되면 버스가 끊겼고 택시조차 드물었다. 그래서 막차를 타는 것도 불가능해지고 집에 가기도 어정쩡해진 시간이 되면, 작업실에 남아 밤을 새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40명의 동기들이 만들어내던 소음이 사라진 작업실은 한결 고즈넉해서,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기 좋았다. 회사에서 종종 했던 철야 근무를 무덤덤하게 해냈던 건, 그 시절부터 단련되어서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불안하게 조금씩 자는 .. 2006. 9. 19. 이전 1 ··· 56 57 58 59 60 61 62 ··· 6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