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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섞인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스밀라가 현관 앞 방석에 몸을 동그랗게 부풀리고 고요히 앉아있다. 예전에는 신발 벗는 곳까지 걸어나와 우두커니 앉아있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붙잡혀 네 발을 닦이고 나더니,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대신 현관까지 와서 내 다리에 머리를 부빈다. 온몸으로 환영인사를 하는 스밀라를 번쩍 안아들고 얼굴을 바짝 댄다. 아르마딜로처럼 등을 둥글게 한 스밀라가 색색ㅡ 숨을 몰아쉰다. 앙증맞은 갈색 코에서 흘러나오는 콧바람이 얼굴에 닿는다. 살아있는 것이 내쉬는 숨은 따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차다. 그렇게 조그만 코에서 흘러나오는 콧바람도 나름 바람인 거다. 나도 지지 않고 스밀라 얼굴에 콧바람을 흥흥 불어넣다가, 스밀라가 뿜어낸 숨을 들이마신다. 허공에서 숨이 섞인다. 2009. 2. 5.
인간과 동물 사이, 몽환적인 인형들 [예술가의 고양이 1] 인간과 동물 사이, 몽환적인 인형들-인형작가 이재연 인형작가 이재연의 작품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환상동화 속에서 걸어나온 듯한 그 인형에는, 낯설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 존재들이 늘 그렇듯,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어디로든 스스럼없이 스며든다. 기묘하고 매혹적인 판타지를 인형으로 빚어내는 작가 이재연을 만났다. 이재연의 일산 작업실 입구는 피규어로 쌓은 성벽 같다. 어두운 지하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유리관처럼 투명한 상자에 담긴 피규어들이 벽을 따라 빼곡히 들어찼다. 그의 작업실이 피규어 쇼핑몰의 창고도 겸한 까닭이다. 피규어 성벽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니, 그제야 작업공간이 보인다. 컴퓨터 .. 2009. 2. 5.
고양이가 좋아하는 '왕따 놀이' 컴퓨터 책상을 새로 사서 방안에 설치했는데, 제가 개시하기도 전에 스밀라가 먼저 컴퓨터 수납장 속에 쏙 들어갔네요. 고양이가 원래 좁고 구석진 곳을 좋아하긴 하지만, 저렇게 몸이 딱 끼는 장소를 좋아하는 걸 보니 귀엽습니다. 책상 들여놓느라 정리가 안 되어서, 흑백으로 전환해서 올려보니 어쩐지 쓸쓸해보이는 풍경이 되었네요. 하지만 고양이에게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는 하나쯤 필요하답니다. 특히 자기 몸에 꼭 맞는 좁은 곳이라면 좋은 쉼터가 되죠. 고양이가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좁고 어두운 곳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고양이 특유의 성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왼쪽 조그만 불빛 부분이 컴퓨터 본체 전원부입니다. 컴퓨터는 그냥 저기에 내내 두고, 수납장 부분은 스밀라 놀이터로 .. 2009. 2. 4.
'예술가의 고양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예술가와 고양이, 잘 어울리는 한 쌍 같죠? 아마도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하며 작업에 몰두하는 예술가의 이미지와,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고양이의 속성이 비슷하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2009년 1월 새롭게 연재할 인터뷰 ‘예술가의 고양이’에서는, 예술가와 함께 살며 창작의 영감을 준 고양이의 사연들, 그 과정에서 작품으로 태어난 고양이의 매력을 만나봅니다. 인형, 사진, 회화,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양이를 모티브로 삼아 창작활동을 하시는 분들, 그리고 고양이와 꼭 함께 살지 않더라도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 관련된 작품을 만드는 분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피비, 조이, 모니카' 세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사는 구체관절인형작가 이재연 씨의 작업실입니다. 사진 모델은 피비입.. 2009. 2. 3.
고양이가 집착하는 물건 '5종 세트' '무심한 듯 시크한' 게 고양이의 매력이라지만, 그런 고양이들도 유독 집착하는 '5종 세트'가 있습니다. 바로 가방, 상자, 비닐, 끈, 베개인데요~ 길고양이만 찍으러 다닐 때는 몰랐던 것을 스밀라와 함께 살면서 하나하나 알아갑니다.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고양이의 집착, 오늘은 그 심리를 한번쯤 들여다보고 싶네요. 1. 가방 고양이에게 가방의 용도는 여러 가지입니다. 크기가 작은 가방은 깔개로, 크기가 큰 가방은 주로 숨바꼭질용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고양이가 뭔가 반려인에게 불만이 있을 때는, 가방 위에 오줌을 싸기도 합니다. 주로 '화장실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어쩐지 저 인간이 나에게 관심이 덜한 것 같다'고 느낄 때 나름의 항의 표시를 하는 거죠. 천 가방이면 괜찮지만, 가죽일 때는 정말 안습;;눈.. 2009. 2. 2.
"저,원래 얼굴이 이래요" 소심한 길고양이 서울의 한 사찰 안에서 만난 이 고양이는 절밥을 얻어먹고 살아갑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길고양이라기보다는, 절고양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반 정착 상태로 살아가니까요. 보통 대학 캠퍼스나, 혹은 절 안에 거처를 마련한 고양이들은 그나마 여느 길고양이보다 생활하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학교 길고양이의 경우에는, 학생들 중에 고양이를 좋아하고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어 사료나 간식을 갖다주기도 하고, 학생식당에서 꾸준히 나오는 잔반이 있어 이것을 주식으로 삼기도 합니다. 절고양이의 경우, 생명을 중시하는 곳이기에 길고양이를 쉽게 내치지 않는 경우가 많답니다. 하지만 별로 근심이 없을 것 같은 절고양이 팔자인데도, 어쩐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이는 .. 2009.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