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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양이 허수아비 '도리요케' 한국의 가을 들판에 참새 쫓는 허수아비가 있다면, 일본에는 눈빛으로 새를 쫓는 '고양이 허수아비' 도리요케 〔鳥よけ〕가 있다. 어떻게 눈빛만으로 새를 퇴치할 수 있다는 걸까? 그것도 진짜 고양이가 아닌, 가짜 고양이의 실루엣으로 말이다. 한국의 허수아비는 농부 옷을 입고 들판에 서서 빈 깡통을 달그락거리며 새를 쫓는다. 요즘 새들은 영악해서 어설픈 허수아비 따위엔 잘 속지 않는다지만, 어쨌든 참새들도 순진했던 그 옛날엔 허수아비가 들판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톡톡히 한몫 했던 것은 사실이다. 언뜻 보기엔 사람처럼 차려입은 모양새에, 살아있는 것처럼 가끔 깡통 흔드는 소리도 한번씩 내주니, 조심성 많은 새들이 허수아비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허수아비가 '사람 같은 겉모습+깡통 흔드는 소리'로 새를.. 2008. 9. 27.
일본 토종고양이와 고양이요괴'네코마타' '어머, 저 고양이는 꼬리가 없네. 잘렸나 봐...아팠겠다.' 요코하마 골목길에서 처음 이 길고양이를 봤을 때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보통 이런 무늬의 삼색고양이라면, 엉덩이 근처에 길고 빳빳한 꼬리를 달고 있을 텐데 꼬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거의 아무 것도 없다시피 했으니까요. "쳇, 이거 왜 이러냐옹! 내 엉덩이를 잘 봐라옹. 이게 꼬리 아니면 뭐냐옹!" 삼색털 길고양이가 저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봅니다. 겸연쩍어하며 삼색냥의 엉덩이를 보았습니다. "자, 잘 안 보이면 확실히 보여주겠다옹." 삼색털 길고양이가 제 눈길을 못 견디겠는지 벌떡 일어납니다. 자세히 보니 토끼꼬리만큼이나 짧은 꼬리가 엉덩이 아래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긴 하네요. 꼬리가 유독 짧은 일본 토종 고양이인 '재패니즈 밥테일'(Japa.. 2008. 9. 25.
여행지에서 맺은 '고양이 이웃'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리워지는 곳은, 행복한 길고양이가 사는 동네다. 길고양이를 귀찮거나 몹쓸 동물로 여기지 않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곳, 길고양이와 함께 스스럼없이 장난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풍경 앞에 서면, 그 속으로 스며드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진다.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없어도, 다시 가보고 싶어진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곧 돈이라고들 한다. 새로운 것을 보아도 모자랄 시간에, 이미 갔던 동네를 다시 가는 건 너무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들 한다. 그러나 새로움에 환희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익숙함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오래된 기억 속의 풍경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픈 사람도 있다. '모범적인 여행 루트'와는 거리가 먼 여행 일정을 짜서, 굳이 야나카 긴자 입구의 .. 2008. 9. 24.
길고양이 식빵 3종 세트 덜 구운 빵, 잘 구운 빵, 너무 탄 빵. 구워진 정도도 제각각, 식빵 셋이 오종종 모여서 잘도 잔다. 2008. 9. 22.
고양이를 사랑한 조각가, 아사쿠라 후미오 고양이를 사랑해 10여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았고, 고양이만을 위한 전시를 꿈꾸며 도쿄올림픽 개막에 맞춰 100개의 고양이상을 빚으려 했던 남자, 하지만 죽음이 꿈보다 먼저 찾아와버린 바람에, 세상을 떠난 아사쿠라 후미오(朝倉文夫, 1883-1964).세상은 그를 '일본의 로댕'이라 불렀지만, 나는 '고양이를 사랑한 조각가'로 기억한다. 도쿄예술대학 조소과 재학 시절, 가난한 탓에 모델조차 고용할 수 없었던 아사쿠라 후미오는 학교 근처의 우에노 동물원을 찾아가서는, 인간 모델 대신 동물들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는 동물들의 역동적인 몸짓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새겼다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손끝으로 재현해냈을 것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멀리서만 지켜볼 뿐 만질 수 없었던 모델이었다면, 그가 키웠던 고양이는.. 2008. 9. 21.
'뽀샤시 사진'이 좋아진 이유 나는 '뽀샤시 사진'을 싫어했다. 땀구멍도, 솜털도, 피부의 질감도 없이 그저 뽀얗게 흐려놓은 사진이라니,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뽀샤시 사진'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결점을 흐리고 뭉갠 다음, 환영처럼 모호한 이미지만 남긴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그 사진에 대한 판단은 엇갈린다. 하얀 얼굴에 구슬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만 남은 얼굴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겐 사진 속의 모습만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뽀샤시 사진'에서 지워진 것들(얼굴의 잡티나, 비뚤비뚤하게 자란 눈썹이나, 눈가의 잔주름 같은)이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김빠진 맥주처럼 닝닝한 느낌밖엔 나지 않을 것이다. '뽀샤시 사진'을 거북하게 느꼈던 건, 결점은 없지만 인간미는 결.. 2008.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