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 아래 목에 목걸이를 찬 고양이들은 거의 주인 있는 고양이다. 하나같이 느긋하고 한가롭다. 사진 속 고양이도 마치 참선하는 것처럼 오도카니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초록색 이끼 방석 위에 앉은 고양이. 나도 축지법을 쓰느라 지친 다리를 잠시 쉬면서, 고양이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본다. 고양이와 나 사이로 바람이 살랑, 스쳐지나간다. 그늘이 준 선물이다. 2008. 2. 5. 소용돌이 다른 부위의 털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듯 떨어지지만, 콧잔등은 조금 다르다. 콧구멍 근처 양쪽으로 조그만 소용돌이가 생겨 빙글빙글 돈다. 폭신폭신한 이마의 주름진 곳이랑, 콧잔등의 짧은 털을 손끝으로 쓰다듬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2008. 2. 2. 초록색 불빛 스밀라가 골똘히 생각할 때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면, 초록색 불이 타오르는 것 같다. 차갑고도 따뜻한 불이 있다면, 고양이의 눈동자와 닮았겠지. 2008. 2. 2. 뒷모습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식당 아주머니가 가게 밖으로 나와 서성거리다 이쪽을 본다. 피곤을 못이겨 잠깐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일까. 아주머니의 시선이 손님 없는 골목을 빙 돌다가, 골목 어귀에 앉은 고양이에게 내려앉는다. 아주머니의 얼굴이 고양이를 향할 때, 고양이도 고개를 들어 아주머니를 바라본다. 둘의 시선이 텅빈 골목길 한가운데서 툭, 하고 부딪친다. 고양이의 앞모습은 순식간에 마음을 홀리지만, 뒷모습은 오래도록 상상하게 만든다. 황토색 고양이는 뭔가 결심한 듯 꼬리를 쳐들고 성큼성큼 걸어 아주머니 쪽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포함되지 않은 나는, 사진의 귀퉁이에 그림자처럼 서서 그들의 만남을 기록한다. 2008. 1. 31. 고개를 숙이고 걷는 고양이 갤러리 잔다리로 가는 길에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는 고개를 숙이고, 평균대처럼 도드라진 길의 경계선을 따라 걷는다.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느릿느릿 걷던 녀석은, 제 뒤를 쫓는 인간의 기척을 느끼고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뛰지는 않지만, 초점을 맞추며 따라 걷기에는 버거운 속도다. 꼬리 짧은 고양이는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깃발을 빼앗긴 패잔병 같다. 의기양양해서 꼬리를 잔뜩 치켜세울 일이 있어도, 전투 자세로 들어가 상대방을 위협해야 할 때도, 저렇게 짧은 꼬리로는 영 폼이 나지 않는 것이다. 짧은 꼬리 고양이를 볼 때마다, 먼지떨이처럼 길고 풍성한 스밀라의 꼬리를 생각한다. 기분이 좋을 때면 스밀라는 무슨 의식이라도 거행하듯이 꼬리를 바짝 치켜들고 거실을 사뿐사뿐 행진한다.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2008. 1. 22. 갈 길이 멀다 2008. 1. 13. 이전 1 ··· 73 74 75 76 77 78 79 ··· 1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