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위에 올라 볕을 쬐고 있습니다. 고개를 쭉 빼고 목을 늘인 모습이
뭔가 기다리는 표정입니다. 앞발을 뻗으면 잡힐 듯이 코앞으로 다가온 봄을 기다리는지...
그러나 이미 흐드러지게 핀 봄꽃이 고양이 등 뒤에 다가와 있습니다. 고양이의 눈을 유혹하는
노란 들꽃도, 곧 있으면 지고 말 것입니다. 혹독한 겨울과 끈적한 여름 사이, 있는둥마는둥
잠깐 머물다 사라질 뽀송뽀송한 봄기운이 아쉽기만 합니다. 길고양이는 오래간만에 만끽하는
짧은 봄볕을 둥그런 등짝 위로 오롯이 받으며, 꽃놀이 하듯 봄구경 하듯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습니다.
그런 길고양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제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풀면서 가만히 보니, 고양이 발 밑에 조그만 무지개 다리가 떠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무지개입니다. 렌즈후드를 씌우지 않고 역광으로 찍은 사진이라 아마도 햇빛이 렌즈에 반사되어
생긴 플레어인 듯합니다. 그래도 제 눈에는 고양이 몸에 딱 맞춘 크기의 조그만 무지개 다리로 보였답니다.
하늘의 무지개는 너무 멀고 높아서 고양이가 닿을 수 없지만, 발 밑까지 내려온 이 무지개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타박타박 건너갈 수 있는 아담한 크기입니다. 무지개가 크게 한번 인심 써서 '고양아, 너도 나를 한번 만져보게
해 줄게' 하고서는 땅으로 내려온 걸까요.
애묘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무지개 다리'란 표현은, 고양이가 이승을 등지고 마지막으로 건너는
다리라고 전해집니다. 사람의 죽음을 비유할 때 망각의 강을 건넌다고도 하고, 북망산을 넘는다고도
하는데, 유독 동물들이 죽을 때 건너는 다리는 왜 무지개 다리일까 궁금했어요. 서양 동화에서는
무지개 다리 끝에 금화가 묻혀있다고 하지만, 그건 어쩐지 너무 재미없는 대답 같지요.
동물들이 건너는 무지개 다리의 끝에는 아마 고통도, 배고픔도 없는 세상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길고양이에게는 그런 무지개 다리 너머의 삶이
어떤 이상향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드네요. 고양이도 렌즈를 통해 저와 눈을 맞추며
무지개 다리를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믿고 싶은, 봄날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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