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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햇볕에 몸을 데우는 길고양이

by 야옹서가 2010. 12. 16.
이제 가을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바싹 말라버린 낙엽더미만 남아있으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12월로 접어든 요즘도 누렇게 변해버린 나뭇잎 사이로 붉은 기를 담은 단풍잎이 보입니다.  

마른 단풍잎 색깔은 다 같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떤 것은 잿빛을 띤 분홍색이고, 어떤 것은

붉은색이 말라붙은 듯한 검붉은색, 어떤 것은 붉은 기를 다 토해내고 갈색으로 변해갑니다.

고양이 털옷이 저마다 다른 색을 담은 것처럼, 밀레니엄 고양이가 은신처로 삼은 이곳의 단풍잎도

고양이 옷을 닮아가나 봅니다.

아직 남아있는 붉은색의 온기만큼, 단풍잎 한 장 한 장이 핫팩이 되어서

고양이의 차가운 몸을 뜨끈뜨끈 데워주면 좋으련만 그저 부질없는 상상에


그칠 뿐입니다. 어렸을 때 배운 차가운 색, 따뜻한 색을 보면서 했던 상상 중에

'따뜻한 색을 만지면 왜 따뜻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만약

붉은색에서도 미약하나마 그런 온기가 느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단풍잎에 온기를 기대할 수 없는 고양이는, 대신
 햇빛을 가만히 받고 있습니다.


조금 더 옆으로 움직이면 양지바른 자리도 있는데, 굳이 약간 응달진 곳의 햇빛에

몸을 기대는 이유는, 역시 이곳이 가장 구석진 자리여서 안심이 되는 위치이기 때문이겠죠. 

성글게 자란 나뭇가지는 바람막이가 되어주지 못해도, 개인공간을 만들어주는 발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구석진 곳에 있다 보니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서

햇빛이 그리운가 봐요. 사람도 햇빛을 주기적으로 쬐어줘야 한다고 하는데

고양이도 마찬가지랍니다. 


먼 곳을 바라보다 저를 발견하고는 눈동자만 살짝 굴려 힐끗 바라봅니다.

약간 흘겨보는 듯 샐쭉한 표정이지만, 귀엽게만 보이네요.

생각해보면 이 녀석도 은신처의 고양이 무리 중에서 비교적 오래 살아남은 편입니다.

성격도 다소 경계심이 있는 편이어서 다른 고양이들보다 늦게 나타나곤 했죠.

평범해 보이고 붙임성이 없어도, 오히려 그 때문에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부쩍 추워진 날씨 탓에 아침 이부자리에서 나오는 시간도 점점 늦어지는 요즘

조각보 같은 햇빛이지만, 해가 들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볕을 쬐고 건강히 겨울을 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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