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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도망가기도 지친다" 늙은 길고양이의 속마음

by 야옹서가 2011. 3. 31.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다 보면 묘하게 신경 쓰이는 곳, 그곳에 대개 길고양이가 있습니다.

자기 몸이 낙엽색과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있는지, 주변에 몸을 가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노랑둥이 길고양이는 무심히 낙엽더미 위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완벽한 보호색입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흘끔 고개 들어 이쪽을 봅니다. 어쩐지 너덜너덜한 느낌이 드는 귀는

꼭 오래 모자를 쓰고 있다가 벗어서 눌린 머리카락처럼 납작하게 머리를 덮고 있습니다.

두 볼이 두툼한 것을 보니 이 지역의 대장냥이로 오래 살아온 녀석입니다.

오랜 길 생활에 익숙해진 길고양이 특유의, 관록이 느껴지는 얼굴입니다.

콧잔등에 난 자잘한 상처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네 길고양이와 앞발 훅을 주고받은

전적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력이 달려 패배하기라도 한 것인지, 한쪽 눈에 흐르는

찐득한 눈물이 새삼 눈에 밟힙니다. 아파서 흐르는 눈물인지, 닦아줄 사람이 없어 그대로 두었는지,

그 눈물이 마를 때까지 고양이는 묵묵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 도망가는 삶에 지쳐버렸을까요? 도망갈 생각도 못하고 그 자세 그대로

몸을 웅크립니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고개를 숙인 모습이 몹시 고단해 보입니다.

오늘은 도망가는 데 기력을 쓰기보다 낙엽에 몸을 숨기는 쪽을 선택한 모양입니다. 

저도 가끔은 그렇게 어딘가에 콕 박혀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늙은 길고양이에게는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하지만 부스럭거리며 조금씩 다가서는 제가 불안했던지, 낙엽더미에 몸을 숨기는 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던지, 늙은 길고양이는 낙엽 은신처에서 몸을 일으켜 저를 한번 보고는


한동안 뭔가 말하고 싶은 얼굴로 서 있다가, 저 멀리 사라집니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단 한번뿐인 만남, 앞으로는 다시 마주칠 일이 없겠지요.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 중에는 어리고 귀여워 사랑스런 마음에 웃음 짓게 되는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이제 다시 볼 수 없겠지' 하는 마음에 아련해지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사람을 경계하고 인상이 그리 부드럽지 않은, 늙은 고양이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집고양이는 나이를 먹어 어린 시절의 귀염성이 사라진 뒤에도, 함께 살아온 정이 있기에

가족으로 사랑받지만, 나이 든 길고양이는 길고양이에 대한 매서운 시선에다 '인상까지 나쁘군'

하는 평까지 짊어지고 남은 생을 살기에, 얼굴에도 그 고단함이 더욱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사는 게 참 쉽지 않구나' 묵묵히 저를 보는 고양이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 읽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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