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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한눈팔다 고립된 어린 길고양이

by 야옹서가 2013. 4. 10.

벼가 익어가는 논둑길을 따라 어미 길고양이가 새끼 두 마리를 이끌고 걸어갑니다. 하나는 엄마를 꼭 닮은 진회색이고, 다른 하나는 젖소무늬 고양이네요. 행여나 엄마를 놓칠세라 어린 고양이들은 종종걸음치며 엄마 뒤에 바짝 붙어 따라갑니다. 저벅저벅 뒤따르는 사람의 발소리를 깨닫고 어미 고양이가 가끔 뒤를 돌아보며 경계합니다.어린 고양이들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집니다.  

 

마침 카메라가 없어 휴대폰카메라로 찍을 수밖에 없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길고양이 뒤를 따라가 봅니다. 혹시 뛰어 달아나면 새끼들이 따라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어미 고양이는 걷는 속도만 빨리할 뿐 뛰지는 않고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깁니다. 어린 회색 고양이는 그런 엄마 뒤를 잘 따라가는데, 젖소무늬의 새끼 고양이는 슬며시 한눈을 팝니다. 아직은 사람 얼굴이 신기한 것이지요. 뒤따르는 저를 구경하느라 고개가 자꾸만 뒤를 향합니다.

 

급기야 멈춰서서 이쪽을 바라봅니다. 그 사이에 엄마와 어린 회색고양이는 저만치 앞서 가버렸습니다. 이제 풀숲으로 몸이 거의 다 숨겨져 꼬리 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한눈팔다 가족 무리에서 낙오해버린 것이죠. 엄마가 있는 자리와는 생각보다 거리가 꽤 벌어지고 말았네요.

돌발상황에 당황한 어린 고양이는 그만 얼어붙고 맙니다. 풀숲에 몸을 숨긴다고 납작 엎드리기는 했는데, 그래도 풀줄기보다는 큰 게 고양이 몸이라서 완전히 몸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아직 사람을 많이 대해보지 못한 길고양이라는 사실이 금방 티가 납니다.

 

대낮인데도 확 열린 동공을 보니, 어린 고양이의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박동이 이쪽까지 전해져올 것만 같습니다. 고양이는 눈동자로 감정을 표현하거든요. 사람처럼 얼굴 근육을 움직여 미소를 짓거나 우는 식으로 희로애락을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고양이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놀람, 흡족함, 불만, 안도감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고양이는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을 눈동자로 지어보이네요.

차마 저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눈길을 애써 돌리는 고양이를 붙들고 너무 앉아있는 것도 민폐인 듯해서, 얼른 엄마 찾아 가라고 자리를 비켜줍니다. 새끼 한 마리가 낙오된 것을 깨닫고 뒤돌아선 엄마가 저 멀리서 근심어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걸 보면, 제가 자리를 비우고 나서 곧 엄마와 다시 상봉하겠네요. 물론 엄마에게 혼쭐은 나더라도 다시 엉뚱한 곳에서 한눈팔지는 않겠지요? 그렇게 이 젖소무늬 고양이도 어른이 되어갈 것입니다.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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