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한참 잘 나갈 때는, 지나가던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지.”
석탄 산업이 활황이던 시절 탄광촌에서 전설처럼 전해져오던 이야기다. 그때 탄광촌을 어슬렁거리는 개는 많았어도 고양이는 드물었을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태백시 상장동 남부마을을 찾아가본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광부들을 그린 대형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요즘 각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그려 넣는 벽화는 예쁘고 귀여운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남부마을에서는 탄광마을의 역사를 담은 그림들이 주종을 이룬다. 황금을 뜻하는 벽화의 샛노란 바탕색은 과거의 영화로운 시절을 상징하는데, 여기에는 쇠락해가는 마을에 희망을 불어넣으려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마을의 맥락과는아무런 연관 없이 예쁘기만 한 그림보다, 내가 사는 골목에 내 동네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 더 친근감 있게 느껴진다.
오래된 골목에서 길고양이와 만날 것 같은 예감은 어긋나는 법이 없어서, 화단에서 시원하게 볼일 보는 녀석과 눈이 딱 마주친다. 등을 둥글게 세우고 발가락에 힘을 준 모습으로 보아 ‘큰 볼일’을 보는 게 분명하다. 고양이 얼굴에도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아무리 인간을 만났기로서니 내 사전에 ‘누다 마는 법’은 없지!”
시원하게 볼일을 마친 길고양이는 대로변을 향해 사뿐사뿐 걸음을 옮긴다.
낯선 곳에서 길고양이를 만나면 꼭 해보는 일이 있다. 고양이 울음소리의 높낮이와 억양을 흉내 내면서 고양이 말을 건네는 거다. 혹시 녀석과 말이 통할까 싶어 “앵!” 하고 말을 건넸더니 뜻밖에도 녀석이 반색하며 “애앵~” 하고 답해온다. 외국에서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났을 때 열렬하게 반가움을 표하듯이 엄청난 목청으로 떠들어대기 시작하는데 마치 “아니, 너 어떻게 고양이 말을 할 줄 알아?”하며 폭풍수다를 떠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고양이 말을 짤막하게 흉내만 내는 실력으론 녀석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충 외워서 말한 게 들어맞은 거라고 털어놓고 싶어도, 그 길고 복잡한 말을 어떻게 고양이 말로 옮길지 몰라 난감했다. 게다가 녀석의 우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골목 끝에서 아주머니가 막대기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게 아닌가. 그저 지나치는 길인지 고양이 소리가 시끄러워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나선 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도 고양이도 지레 놀라 길가에서 벌떡 일어났다. 녀석은 영역을 순찰하러 골목 밖으로, 나는 녀석과 작별하고 골목 안쪽으로 접어든다.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 [고양이 여행]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눈팔다 고립된 어린 길고양이 (1) | 2013.04.10 |
---|---|
생선공장 지키는 고양이의 호기심 (6) | 2013.04.09 |
길고양이 따라 10년, 책이 된 '길고양이 통신' (12) | 2013.04.05 |
고래벽화마을에서 만난 길고양이 (2) | 2013.04.04 |
매섭게 꾸지람하는 길고양이 (7) | 2013.04.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