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던 무렵, 출근길 버스에서 내려 대로변에서 골목길로 들어가면 회사까지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었다. 시간이 부족한 아침이면 그쪽으로 자주 다니곤 했는데, 길가에 가끔 털북숭이 검둥개가 나와 있곤 했다. 길에서 동물을 만나면 잠깐이라도 인사하고 말을 건네다가 가지만, 바쁜 출근길에 오래 시간을 낼 수 없는 게 매번 아쉬워서 하루는 점심 먹고 들어가던 길에 그 집 앞으로 다시 찾아가 보았다.
검둥개는 여전히 덥수룩한 얼굴로 대문 앞에 앉아 있었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웬 통통한 삼색 길고양이가 곁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배가 불룩한 걸 보니 산달이 다 된 모양이었다. 꼬질꼬질한 입성을 보아 길고양이는 틀림없는데, 같은 집에서 사는 상황도 아니면서 경계심이 없다.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대하는 게 신기했다.
동네 분들께 여쭤보니 개의 이름은 경복이, 고양이의 이름은 네로라고 한다. 경복이가 경복이로 불리게 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네로는 아마 '검은 고양이 네로'라는 노래에서 따온 이름일 게다. 그나저나 둘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같은 동네 살며 얼굴 보고 다니다가 길고양이와 개 사이에도 이웃의 정이 생겨난 게 아닐까 추측할 수밖에.
네로가 뚜벅뚜벅 걸어 경복이에게 가까이 간다.
흔히 개와 고양이를 앙숙이라고 여긴다. 어렸을 때 읽었던 고전설화 ‘개와 고양이’를 보면, 노부부가 잃어버린 보물을 개와 고양이가 힘을 합쳐 찾아오지만, 막판에 고양이가 공을 가로채 노부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고양이는 인간에게 사랑을 받아 집안에서 고이 대접받으며 살게 되었고, 개는 이후로 고양이를 원수처럼 여겨 만나기만 하면 으릉거리는 사이가 되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옛날이야기일 뿐, 실은 두 동물의 몸짓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개가 상대방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할 때 고양이는 공격 준비 신호로 받아들인다.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그릉그릉 소리도 개의 입장에서는 으릉거리는 소리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다보니 오해와 다툼이 생겨 공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이 달라도 예외적으로 개와 고양이가 사이좋게 지내는 경우가 있다. 검둥개 경복이와 길고양이 네로가 딱 그렇다.
경복이가 문앞을 지키는 동안, 네로는 전봇대 앞 자기 지정석으로 가서 앉는다. 친구라고 해서 꼭 껌딱지처럼 붙어다니거나, 만나서 내내 수다를 떨 필요는 없다. 서로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있되, 아무 말없이 함께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하고 든든해지는 게 진짜 친구다.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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