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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길고양이, '친해지기'보다 '편해지기'

by 야옹서가 2013. 5. 3.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거리에서 가끔 경험하는 낯선 고양이와의 만남이 있지만, 다닌 지 오래되어 익숙한 곳에서도 세대교체로 인해 예전에는 못 보던 새 얼굴이 기다리곤 한다. 그래서 길고양이와 얼굴을 마주 대한다는 건 익숙해서 편해진 관계를 이어가는 것보다, 새로운 만남과 관계를 그때그때 경험해가는 쪽에 더 가깝다. 낯선 사람에게 고양이가 경계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다고 해서, 고양이 쪽에서도 똑같은 감정을 갖는 것은 아니다. 
  

처음 길고양이를 만나러 다니던 무렵에는, 반가운 마음에 우다다 뛰어갔다가 결과적으로는 고양이가 편히 쉬던 장소에서 쉬지 못하고 도망가게 만들어버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처음에는 내 마음이 성급한 건 생각 못하고, 고양이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만 서운했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고양이는 왜 나를 무서워할까' 하고 생각하는 게 우선이 아니라, 길고양이가 먼저 나를 편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였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길고양이와의 관계는 '친해지기'보다 '편해지기'를 추구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길고양이를 만나면 20대 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반가워 뛰어가는 대신, 나도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다가간다. 정작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더라도 고양이처럼 딴청을 부리면서.   

몸을 숙이고 엉덩이를 땅에 내려놓지 않던 고양이가 '어라, 저 인간은 특별히 위협적인 움직임이 없네' 하고 생각하면서 잠시 마음을 놓을 때까지. 아주 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고양이가 불안감을 느끼지는 않을 거리를 유지하면서 기다린다. 내 쪽의 동태를 살피느라 내내 눈길을 떼지 않던 고양이도, 내내 긴장상태에 있지는 않고 약간 마음이 누그러져 한눈을 판다. 고양이가 한눈을 팔기 시작할 때, 마음의 빗장도 조금 열렸다는 뜻이다. 

 

나는 길고양이가 무심한 얼굴로 앉아있는 모습이 좋다. 고양이가 무심할 수 있다는 건 그 순간을 편안하게 느낀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므로. 녀석들과 무리해서 친해지려 하기보다, 녀석들과 만나는 동안 잠시라도 편한 마음으로 얼굴을 마주볼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사람에게 익숙해 붙임성 많은 녀석들은 처음 보는 나에게 먼저 다가오기도 하지만, 나를 낯설게 여기는 길고양이는 최소한의 안전거리를 확보해주어야 마음을 놓는다. 그렇게 서로 데면데면한 얼굴로 앉아있다가, 녀석이 등지고 선 황토벽이나 깔고 앉은 포대자루처럼 나를 무심한 눈길로 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고양이가 편할 때, 나도 편하다.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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