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집 근처에서 닷새째 방황하고 있던 고양이가 있었다. 혹시 집 잃은 고양이가 아닐까 싶어 닷새 동안 기다려봤지만, 찾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빵을 주기도 했는데 먹지 않고,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먹던 사료를 주니 잘 먹더란다. 원래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라 빵 따위는 거의 먹지 않지만, 길고양이 생활이 오래 가면 빵은 물론이고 밥도 먹는다.
결국 친구가 데려다 씻기고 입양을 보낸다며 케이지에 넣어 데려왔다. 요즘 비도 많이 오는데, 자립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 녀석을 언제까지 길바닥에 내버려둘 수 없었다고. 한데 그 집에서도 이미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길고양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던 터라 둘째까지 업둥이를 들일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일단 데려와서 입양을 보내든가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을 꺼냈던 나도 고양이를 들일 만한 상황은 아니어서 난감했다.
생김새를 보아하니 평범한 길고양이는 아니다. 비쩍 말라서 첫인상은 회색 쥐 같았지만 우아한 털코트가 예사롭지 않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커다란 연두색 눈도 예쁘장하다. 품종을 검색해보니 페르시안 친칠라다. 요즘은 코숏이건 품종묘건 관계없이 버려지는 고양이들이 많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이 녀석이 얼마나 얌전한지, 안아올려도 가만히 있고, 앞발을 꾹 잡아도 발톱 한 번 내미는 법이 없었다. 가끔 가느다란 목소리로 야옹- 우는 정도였다. 구석진 곳으로 슬슬 피하기는 해도 사람에 대한 경계나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 같진 않다. 얼마 전까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틀림없다.
다행히도 하루만에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홍대 앞 주차장 골목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여자분이라고 한다. 친구네 집에서 쓰던 모래와 사료까지 함께 전달하고 왔단다. 새침하게 생겼지만 사람을 잘 따르던 흰고양이. 장마철에 버려져 비 맞으며 길에서 헤매던 기억을 잊고, 새 집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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