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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고양이 스밀라

비오는 날, 스밀라

by 야옹서가 2006.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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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7단 수납장 위에 또아리를 튼 스밀라. 얼떨결에 데리고 있게 된 게 열흘째다. 처음 데려온 날 테이블 밑 어둡고 구석진 곳으로 자꾸 들어가기에, 상자 같은 걸로 통로를 막았었다. 그랬더니 앞발로 벅벅 긁으면서 들어가려고 버둥거리는 게 아닌가. 사방이 트인 곳에 있기가 불안했던 모양이다. 결국 길을 다시 열어줬더니 밥 먹고 그루밍한 다음에 ‘고양이 동굴’로 들어가서 웬만하면 잘 나오지 않는다.


며칠 전 7단 수납장 위에 셔츠를 깔아뒀더니, 어두워지면 그 위에서 뒹굴뒹굴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결막염은 이제 다 나았는데, 이렇게 어영부영 데리고 사는 건가, 싶기도 하다. 어머니는 가끔 방에 들어와서 “고양이 팔자가 좋구나” 하고 부러워하며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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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나를 봐도 본척만척하거나 구석진 곳으로 숨기 바빴는데, 이제 여유가 생겼는지 아침저녁으로 말도 건다. 자신감 없게 들리는, 아기 같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앵’ 하고 짧게 운다. 손을 내밀면 냄새를 킁킁 맡고, 쓰다듬어주면 고륵고륵 소리 내면서 지그시 눈을 감는다. 재미있는 건, 고양이 앞에 앉아서 ‘앵’ 하고 흉내를 내면, 고양이도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앵’ 하고 다시 받아친다는 점이다. 한가한 어느 날 아침에는 그렇게 3분 가까이 서로 앵앵거리며 놀았다. 

지금 가장 걱정되는 건, 큰 송곳니 하나가 없다는 점. 이빨이 없는 쪽 입술이 약간 말려올라가 저런 표정이 나온다. 아깽이가 아니라서 이갈이를 하는 것도 아닐 테니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 밥 먹을 때 깨작깨작 하는 것도, 이빨이 좋지 않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한번 밥 먹을 때 새 오줌만큼 먹는다.

게다가 물도 잘 안 먹어서, 염소똥처럼 동글동글하게 떨어지는 변을 본다. 습식 사료를 줘야 하려나. 쇼핑몰에 사료와 모래를 주문하면서 샘플로 받은 만복 파우치를 줬더니, 그것도 한 번에 다 못 먹는다. 나름 좋아할 줄 알았는데, 돌쇠처럼 우적우적 먹어주길 바란 것은 너무 큰 기대였나 보다-_-


하여간, 예고도 없이 내 인생에 갑자기 끼어든 고양이 때문에 즐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고민이다. 조만간 집을 나와 살게 되면 고양이랑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지금은 고양이가 마음대로 우다다를 할 만한 공간도 없고, 방 밖으로 데려나갈 수도 없는 상태라서. 장맛비를 맞으면서 거리에서 연명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고양이가 이런 환경에서 행복할지는 잘 모르겠다. 얼마를 더 모아야 전세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으려나, 열심히 계산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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