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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지붕 위 숨바꼭질하는 길고양이들

by 야옹서가 2008. 9. 8.
도시에서 길고양이가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지붕 위가 바로 그들의 소중한 아지트입니다.
하루에 한번 하늘 보기도 힘든 사람들이 지붕 위까지 시선을 돌릴 리 없기 때문이죠.
골목길 한구석조차 길고양이에게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도, 지붕 위로 돌을 던지지는 않으니까요.

길고양이는 지붕 위에서 잠을 자고, 숨바꼭질을 하고, 때론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명상에 잠깁니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 모든 것을 초월한 달인의 풍모가 느껴져요.
도심 속의 작은 쉼터, 지붕 위 아지트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만 모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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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지붕위로 얼굴만 내민 고양이 얼굴. 저 사람이 안전한지 아닌지 재 보는 것 같아요.
몸은 기와지붕 뒤에 숨긴 채 뾰족한 귀를 안테나처럼 세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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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숨바꼭질 고양이. 감나무 아래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바라보는 신림동 주택가 길고양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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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제역 인근 개미마을에서 만난 길고양이입니다. 얼룩덜룩 코트가 오래된 기왓장 속에
녹아들 것처럼 비슷한 보호색이네요. 우뚝 선 고양이는 낯선 자의 눈길에도 주눅드는 법 없이 당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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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까 그 고양이는 어디 있었을까요? 한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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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코하마 주택가에서 만난 흰고양이. 목에 목줄을 한 것으로 보아서는 외출고양인 것 같아요.
일본 고양이 여행을 다니는 동안, 길에 나다니는 고양이 중에 의외로 흰고양이가 많아서 놀랐어요.
왼쪽 나무기둥이 스크래치 자국으로 긁혀있는 걸 보니 평소에 자주 와서 스트레스 해소를 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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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이 더러워질세라 열심히 그루밍을 합니다. 요가 자세가 따로 없네요.
고양이미술관으로 가는 도중에 길을 잃고 헤매다 만난 녀석이라 더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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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쉼터였던 삼각형 모양의 이 집은 사진을 촬영하고 몇 달이 지난 후에 헐리고 말았습니다.
이곳에도 곧 연립주택이나 대형 건물이 들어서겠죠. 길고양이의 쉼터 한 곳이 이렇게 또 사라집니다.
널따란 지붕 위에 오두마니 앉아있는 턱시도 고양이의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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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쉼터를 잃어버린 까만 고양이는 지금쯤 어디서 지친 몸을 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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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찾는 종로 대형빌딩 인근 길고양이를 찾아가봤어요. 고양이를 찍으러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은 원래 찍으려던 것보다, 의도하지 못했던 다른 피사체가 더 마음을 끌기도 해요.
원래 앞에 앉은 황토색 고양이를 찍으려던 거였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저 멀리 맥줏집 창가에
어린 길고양이 두 마리가 창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보이네요. 저 아이들도 찍었으면 귀여웠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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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통의동 주택가 지붕에 길고양이가 몸을 누이고 낮잠에 빠졌습니다.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여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오밀조밀 정겨운 집들이 등을 맞대고 있던 근처 안국동이나 사간동 골목길에도
어느새 연립주택과 상업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선 지 오래입니다. 동네 목욕탕이 있던 자리는
으리으리한 갤러리로 바뀌고, 철물점은 전통음식점으로 바뀌었죠.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아쉬운 걸까요?

어쩌면 길고양이 은신처가 사라지는 건,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서도,
문만 나서면 땅을 밟고 걸어다닐 수 있는 나지막한 집들이 점점 사라진다는 게 아닐까 합니다.
주변에서 길고양이들이 마음 편히 쉴 단층주택들이 오랫동안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  
내 집도 아닌, 남의 집을 바라보면서 주제넘게도 이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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