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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박물관 기행

국악박물관

by 야옹서가 2005. 8. 17.
 

[주간한국/ 2005. 8. 17]여름방학 철이 되면 서초동 예술의전당 근처는 가족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전시와 공연이 줄을 잇는다. 가족 관람객을 겨냥해 흔히 ‘방학용 전시’로 불리는 일련의 기획전시들은 대개 비싼 관람료가 책정되어 있지만, 어려서부터 아이들의 감성 지수를 길러주고 싶어하는 부모들로 붐비기 마련이다. 그러나 금방 지루함을 느끼며 바깥으로 뛰쳐나가려는 아이들 손을 잡아끌고, 수많은 인파에 치여 진땀 흘리다 보면 도대체 뭘 보러 왔나 싶고, 은근히 ‘본전’ 생각이 나기도 한다.

이럴 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예술의전당 국립국악원 내에 위치한 국악박물관이다. 국내 유일의 국악 전문 박물관이라는 위상을 자랑하면서도, 관람료를 받지 않아 추가비용 부담이 없고, 관람객이 많지 않아 쾌적한 분위기에서 전시물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5년 2월 개관한 국악박물관은 국악기, 국악 음반을 비롯해 국악 관련 옛 문헌 등 3,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 1층에는 국악사실, 악기 전시실, 명인실, 고문헌실, 국악 체험실, 입체 영상실 등 6개의 전시 및 체험시설이 있으며, 2층에는 신국악 작곡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진 김기수 선생의 악기와 서적 등 1,3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한 죽헌실이 마련되어 있다.

박물관 건물은 현대적인 외관을 갖췄으나 곳곳에 전통 건축의 색채를 불어넣은 흔적이 여실하다. 고대 성곽을 단순화한 듯 단단하고 옹골찬 모양새에, 지붕의 끝 부분은 기와집 처마가 흔히 그러하듯 버선코처럼 살짝 치켜 올라가 마치 우리네 전통가옥을 보는 듯 친근감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 되살아나는 전통 국악
내부로 들어서면 150평에 달하는 중앙홀을 네모지게 빙 둘러싼 대형 국악기들이 우뚝 서서 위용을 자랑하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예컨대 조선조 세종 때 만들어져 조회와 잔치음악의 시작과 끝에 사용된 북의 일종인 건고(建鼓)를 보자. 호랑이 조각을 한 십자형 발 가운데 기둥을 꽂고 큰 북을 세웠는데, 북 위에 다시 2층으로 된 장식을 올렸고, 다시 그 위에 비상하는 흰 새의 조각을 올렸다. 그 높이가 어른 키의 두 배는 됨직하니, 당시의 연주 행렬이 얼마나 웅대했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밖에도 중앙홀에서 만날 수 있는 국악기는 편경, 특경, 축, 어 등 30점에 가까운 수를 헤아린다. 단순히 전통 국악기를 전시한 것뿐 아니라, 일부 악기는 연주할 때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누르면 소리가 나는 부저를 장치해 교육적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다.

전시된 작품 중에서도 신라 시대의 가야금인 신라금은 외관의 단순미를 화려한 장식으로 보완해 눈길을 뗄 수 없다. 신라금은 일본 왕실이 수집한 보물을 보관했던 나라(奈良) 동대사(東大寺)의 정창원(正倉院)에 소장된 한국 고대 악기로, 현재 한국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으나 복원된 형태로 그 자취를 짐작할 수 있다. 마치 금으로 새긴 눈의 결정처럼 화사한 장식은, 함께 전시된 풍류가야금의 밋밋한 외관과 대조를 이룬다.

국악박물관이라 해서 악기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앙홀에서는 정조가 화성에 위치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린 ‘화성능행도병’, 정조와 혜경궁 홍씨의 행차를 묘사한 ‘반차도’등 전통 기록화를 감상할 수 있다. 한편 국악사실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 악기를 연주하는 신라 토우 등의 사료를 전시하고 있어 한국 음악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볼 수 있다.

국악기와 세계 민속악기의 만남
국악기만 보기에 다소 지루함이 느껴진다면, 아이들 손을 붙잡고 악기 전시실로 데려가 보자. 한국 전통악기 53점과 아시아ㆍ아프리카 민속악기 196점을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로 세분해 전시했는데, 각 나라의 악기를 비교해 가며 감상하는 맛이 있다. 따블라(인도), 노타이코(일본), 발라라이카(러시아), 래틀(나이지리아), 타폰(태국), 사웅가욱(미얀마) 등 이름만 들어도 생소한 해외 악기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이밖에도 명인실에서는 가야금 산조로 유명한 강태홍 선생의 가야금, 고수로 이름을 떨쳤던 김명환 선생의 북, 판소리의 대가 정권진 선생의 유고, 단소 연주의 달인 김무규 선생의 단소 등 국악 명인 14명의 유품 50여 점을 볼 수 있다.

또한 음향 영상실에서는 국악 음반을 비롯해 다채로운 영상자료를 통해 우리 국악의 변천사를 일별할 수 있다. 특히 이제는 볼 수 없는 유성기판을 비롯해 LP, CD 등이 고루 비치되어 있어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아이들에게는 지난 시대의 생활사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익한 공간이다. 한편 고문헌실에서는 국악 및 전통무용과 관련한 고문서 및 고악보들이 전시되어 있다.

국악박물관은 예술의전당과 인접해 있으나 전시 및 공연이 이뤄지는 미술관ㆍ오페라하우스와는 약간 떨어져 있어 10분 가량 걸어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올라가는 도중에 음악분수 등 시민 휴식 공간이 있으니 한동?지친 다리를 쉬고 가도 좋을 듯하다.

특히 8월 27일까지 박물관을 방문하면, 광복 60주년 기념 특별전 ‘한민족의 발자취를 소리에 담다’전도 감상할 수 있다. 한국고음반연구회와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1896년 미국에서 한국 노동자들이 취입한 ‘아리랑’과 ‘애국가’가 수록된 음반, 월남 이상재 선생의 독립연설 ‘조선청년에게’ 육성음반,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제패 소감을 담은 ‘우승의 감격’ 육성음반, 박시춘 작곡의 친일가요 ‘지원병의 어머니’, ‘아들의 혈서’ 수록 음반 등 지금까지 일반에게 공개된 바 없는 희귀 음반들이 최초로 선보인다. 전시실에는 고음반의 원음을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도록 유성기가 설치되어 있고, 전시된 음원 중 일부는 CD로 복각해 판매하니, 옛 음악 사료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들러볼만하다.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관 람 료: 무료
문의전화: 02-580-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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