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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카메라 들고 사무실 뛰쳐나온 다섯 명의 ‘김대리’들

by 야옹서가 2001. 12. 13.

Dec 13. 2001
|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대학시절의 꿈을 어느 정도 접고 빡빡한 일상에 쫓기지만, 자기계발과 여가활동에 대한 욕구도 포기하지 않는 평범한 직장인. 편의상 이들을 ‘김대리’라 부르기로 하자. 이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신문로 흥국생명빌딩 내 일주아트하우스 미디어갤러리에서 12월 24일까지 열리는 ‘카메라를 든 김대리’전은 다섯 명의 개성 넘치는 직장인들이 영상작가로 데뷔해 극영화,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직장인이 만든 극영화,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미디어아트·영상예술 전용공간 일주아트하우스가 소수의 전문가들에게만 열려있었던 전시공간의 문을 넓히기 위해 기획한 대중참여 프로그램 ‘카메라를 든 김대리’전은 영상에 관심 있는 수도권 일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와 작품 설명서를 심사해 9월 초 참여희망자를 선정했다. 나이, 성별에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40대 이상 직장인에게는 영상매체가 다소 낯선 탓인지 전시명처럼 ‘김대리’ 연배의 직장인들이 주류를 이뤘다. 영상제작기법, 디지털 편집실기 등 3개월 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작품을 완성한 ‘김대리’들은 한빛은행(나대경),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남세현), 청하도시조형연구소(박자영), 영화 미니어처 제작사(염은정), 엘레세 디자이너(홍윤정) 등 직종이 다양하다. 

이 중에서 한빛은행에서 근무하는 나대경의 극영화 ‘뿌리내리기’(DV 6mm, 25분)는 비정규직 여성 은행원 4명이 겪는 고뇌를 진지함과 유머를 교차시키며 풀어내 눈길을 끈다. 애교로 상사들의 마음을 녹이고 초과업무를 자청하거나 고위층의 ‘빽’을 이용하는 동료 여직원들을 실력으로 제치고 정규직원이 됐지만, 결혼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비정규직 여직원 이야기를 중심으로 혼전 성관계, 여직원 흡연 등 다양한 문제를 다뤘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담다보니 다소 산만한 감이 없지 않지만, 직장 상사와 동료들이 직접 배우와 스텝으로 나서 직장인의 일상을 표현한 생생함이 돋보인다.

한편 다섯 명의 ‘김대리’ 중 유일한 남성 멤버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서 근무하는 남세현은 다큐멘터리 ‘오픈 프로포즈 : 민수형 장가보내기’(DV 6mm, 15분)에서 ‘노총각 장가보내기’라는 독특한 취지를 내세웠다. 남세현은 걷기가 약간 불편한 서른 다섯 살의 직장 동료 민수씨를 장가보내기 위해 뉴스, 토크쇼, 6mm 시네마 등 다채로운 형식을 빌려 ‘멋진 노총각’ 민수형을 홍보한다.

디지털 매체의 장점을 활용한 예술대중화 선언
이밖에도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형식을 혼합해 대학동창간인 20대 여사원 네 명의 직장생활과 꿈을 그린 박자영의 ‘…모두, 하고 있다’ (DV 6mm, 13분), 김광석을 추모하고 그의 노래를 생음악으로 연주하는 매니아 카페 ‘거품 in’을 중심으로 자신의 서른 즈음을 정리한 염은정의 다큐멘터리 ‘서른 즈음에…’(DV 6mm, 20분), 옥탑방에서 자취하면서 스토킹을 당하는 미대생 이야기를 담은 홍윤정의 단편영화 ‘WHO’(DV 6mm, 22분) 등이 전시장 내에서 상시 상영된다.

전시기획자 이영자씨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직접 작품을 촬영하고 편집한 이번 프로그램은, 비교적 다루기 쉬운 디지털 매체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영상언어가 더 이상 전문가의 전유물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줬다”며 전시의 의의를 밝혔다. 좁은 사무실을 뛰쳐나와 외부세계로, 혹은 자신의 속내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미는 ‘김대리’들의 짧은 일탈은 무료한 일상에 갑갑함을 느끼는 직장인들에게 충분한 자극제가 될 듯하다. 전시관람료는 없으며 자세한 문의는 02-2002-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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