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회색 풍경 속에 깃든 몽환적 세계-권옥연전

Dec 21. 2001 | 촉촉하게 물을 머금은 진흙, 어스름한 초저녁의 달빛, 추억 속을 떠도는 먼지를 곱게 섞어 만든 물감이 존재한다면 이 물감은 어떤 빛을 띠고 있을까? 그 답은 원로작가 권옥연(78)의 화폭 속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내년 1월 2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 제1, 2전시실에서 열리는 ‘2001 올해의 작가 권옥연’전은 이처럼 독특한 색채미학을 담은 그의 대표작 60여 점과 조소작품 7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1995년부터 매년 한국미술의 발전에 기여한 작가들을 선정해 ‘올해의 작가전’을 개최했던 국립현대미술관측은 수상작가가 주로 중·장년층에 치우쳤던 점을 보완하기 위해 올해부터 중견작가와 원로작가를 나누어 시상했다. 이에 따라 2001년부터 신설된 원로작가 부문에서 권옥연이 최초로 선정됐다.

동양적 초현실주의로 그려낸 몽환적 세계
작품활동 초기에 고갱 등 외국작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나, 1957년부터 3년 간 프랑스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1970년대 초까지 추상주의와 초현실주의가 혼재된 화풍을 선보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 역시 한국적인 서양화를 구축하기 전까지는 많은 부분 서구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권옥연 작품의 독자성은 다양한 서구미술사조를 흡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은 원형적 이미지를 표출해낸 데 있다.

예컨대 반달이나 솟대, 상형문자, 토기와 목기 같은 전통적 기물 등이 변형되고 재조립되면서 창조된 풍경은 청회색 계열의 색채와 어우러지면서 몽환적인 정서를 이끌어낸다. 미술평론가 이건수씨는 권옥연 작품의 조형적 측면을 가리켜 “‘정적인 앵포르멜’이며 ‘정감적 원시주의’이고, 서구의 초현실과는 다른 동양적인 초현실의 세계”라고 평가한 바 있다.

권옥연 작품의 주된 정서를 이루는 색채는 회색과 청색, 흙색이 미묘하게 배합된 것으로 하나의 색이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 다채롭다. 이러한 색채미학은 인물상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큰 눈에 오똑한 코끝이 약간 들린 서구풍의 미인을 즐겨 그렸던 작가는 흙으로 빚어낸 듯한 잿빛 피부를 덧입혀 특유의 우수에 젖은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우수에 젖은 독창적인 색채미학 선보여
지금까지 평면회화만을 선보였던 권옥연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조소작품 7점을 출품해 눈길을 끈다. 어린아이가 놀이하듯 소박한 솜씨로 만든 점토작품들은 모두 2001년 들어 시작한 것으로, 입체작업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작가의 강한 의욕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본 전시가 열리는 덕수궁미술관의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이며 덕수궁 입장은 폐관시간 1시간 전까지다. (월요일 휴관) 덕수궁 관람권을 구입하면 별도요금 없이 전시관람이 가능하며, 2층의 제3, 4전시실에서는 2002년 1월27일까지 열리는 조각가 김정숙 10주기전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문의전화 02-779-53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