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속에서 걸어나온 ‘월레스와 그로밋’ 직접 만나요

Dec 27. 2001 | 말랑말랑한 점토 인형이 살아있는 배우처럼 다양한 연기를 펼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에 매료돼본 사람이라면, 필름 뿐 아니라 실물 캐릭터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을 한번쯤 가졌을 것이다. 12월 21일부터 내년 1월 20일까지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개최되는 ‘제2회 영국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아드만 특별전’에서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아드만 스튜디오의 초기작 ‘모프’ 시리즈를 비롯해 ‘월레스와 그로밋’, ‘치킨 런’, 최근작 ‘렉스’ 시리즈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촬영세트, 스토리보드 등 총 16점이 전시된다.

아드만 스튜디오의 대표작들이 한 자리에
1972년 창립된 아드만 스튜디오는 30년 간 1백10여 편의 작품을 만들면서 단편 ‘동물원 인터뷰’(1989),‘전자바지 소동’(1993), ‘양털도둑’(1995)으로 오스카상을 3번이나 수상한 굴지의 애니메이션 회사다. 그러나 그 시작은 간소했다. 학창시절 집 부엌에서 부모님의 카메라로 애니메이션 기술을 시험하던 데이비드 스프록스톤과 피터 로드 단 두 사람이 창립멤버였다. 이들은 1976년부터 제작한 ‘모프(Morph)’시리즈를 시작으로 빨강머리 청년의 엉뚱한 돌출행동을 그린 ‘앵그리 키드’시리즈, 어수룩하지만 착한 월레스와 현명한 강아지 그로밋이 등장하는 ‘월레스와 그로밋’, 드림웍스와 손잡고 만들어낸 첫 장편 애니메이션 ‘치킨 런’ 등을 선보이며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각인시켰다. 

전시된 작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개의 전시실 중 하나를 독차지하다시피 한 ‘치킨 런’의 촬영세트다. 자유를 꿈꾸는 암탉 진저와 그의 동료들이 탈출을 모의했던 헛간을 그대로 옮겨온 세트 안에는 캐릭터들과 함께 짚이 깔린 이층 침대, 탈출방법을 연구한 대자보, 소일거리를 위한 다트게임, 구석에 놓은 난로 등 정교한 소품들이 어우러져 사실감을 더한다. 이밖에도 고약한 성미의 농장주인 트위디 여사가 사들인 거대한 치킨파이 기계, 닭들이 탈출할 때 사용한 비행기 등은 아드만 스튜디오 사상 최대의 제작규모를 기록한 작품답게 그 규모가 상당하다.

‘치킨 런’보다 규모는 작지만, ‘월레스와 그로밋’의 촬영세트도 주목할만하다. 강아지 그로밋이 감옥에 갇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는 장면이나, 식탁 위로 뛰어든 양을 보고 월레스와 그로밋이 비명을 지르는 장면 등 재기 넘치는 유머가 돋보인다. 특히 둥글고 작은 머리, 큰 입에 개구쟁이처럼 앞니를 내민 월레스의 얼굴을 ‘치킨 런’의 닭 캐릭터와 비교해 보면 ‘월레스와 그로밋’의 연장선에서 ‘치킨 런’이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촬영세트, 실물 캐릭터, 스토리보드까지 망라해
촬영세트와 캐릭터 실물 전시 외에도 단편 ‘전자바지 소동’의 스토리보드, 캐릭터 제작과정을 설명한 패널 등이 전시돼 클레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듯하다. 예컨대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표정이나 동작을 보면 1백 퍼센트 점토로 만든 것으로 상상하기 쉽지만, 실제로 아드만 스튜디오의 캐릭터들은 아마츄어라고 불리는 뼈대 위에 플라스티신(Plasticine)이라는 합성플라스틱 점토를 사용하거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실리콘으로 제작된다고 한다.

이번 전시의 부대행사로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영상관에서 12월 30일까지 아드만 스튜디오의 단편 애니메이션, 광고, 뮤직비디오 등 총 30작품을 1일 3회(11시·14시·17시) 상영한다. 전시 및 영화 관람료는 무료이며 영화관람은 선착순 입장이다.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 02-3455-8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