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21. 2001 | 12월 14일부터 2002년 2월 24일까지 로댕갤러리에서 열리는 ‘현대조각과 인체’전은 예술가들의 오랜 창작 모티브인 인체를 주제로 20세기 조각사를 조망한 기획전이다. 구상적인 인체조각뿐 아니라 추상조각도 포함된 이번 전시는 현대조각의 시초인 로댕을 기점으로 앙트완 부르델, 아리스티드 마이욜, 알베르토 자코메티, 헨리 무어, 조지 시걸, 루이즈 부르주아, 데이빗 스미스, 이사무 노구치 등의 작품 22점을 선보인다. 르느와르, 모딜리아니, 미로, 톰블리 등 회화로 유명한 작가들의 조각도 출품돼 이채롭다.
20세기 현대조각의 흐름 한눈에
상설전시중인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1889)과 ‘지옥의 문’을 제외하면, 전시장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은 앙트완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1909)다. 로댕의 직속 제자였던 부르델은 스승이 미켈란젤로의 노예상에서 영감을 얻어 ‘청동시대’(1876∼77)를 제작했듯 그리스 조각에서 영감을 얻었다. 고전적인 모티브를 선택했지만, 이 작품은 정형화된 규칙을 따라 제작된 그리스 조각과 달리 강한 긴장감과 생동감을 내포하고 있다. 전설의 식인새 스팀팔리온을 겨냥해 활시위를 힘껏 당기고 몸을 지탱하기 위해 양다리를 바위에 밀착시킨 헤라클레스의 역동적인 모습은 그의 시선이 향하는 허공까지 공간감을 확장시킨다.
로댕, 부르델, 마이욜로 이어진 사실적인 조각을 재해석한 흥미로운 예는 에릭 시걸의 ‘러시 아워’(1983)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에릭 시걸은 주변사람들의 몸을 석고형으로 떠 등신대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로댕이 ‘청동시대’를 제작할 때 실제 인물의 몸을 주물로 떴다는 오해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한 세기 뒤에 제작된 ‘러시 아워’의 제작방식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눈을 감고 있는 여섯 명의 인물상은 실제 사람의 몸을 그대로 뜬 것으로 출퇴근길에 한 방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무표정한 사람들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재연하고 있다. 그것은 전시장 입구의 ‘칼레의 시민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표출하는 도구 - 몸
구상적인 인체조각과 달리 추상조각은 특정한 속성만을 극대화해 표현하므로 사실적인 형태가 생략된 대신,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해 보여준다. 현대인의 황폐한 내면을 상징하는 자코메티의 뼈대만 남은 실존주의적 조각이나, 생물유기체적인 유선형으로 표현된 장 아르프의 조각에 내재된 생명력을 읽기란 어렵지 않다. 핑크빛 천을 바늘로 꿰매어 얼굴 모양을 만든 루이즈 부르주아의 소프트 조각 역시 상처 입은 내면을 극복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재료가 주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도 현대조각의 특성 중 하나다.
최근 몸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지면서 인체조각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수단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표출하는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신고전주의, 초현실주의, 미니멀리즘,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사조가 반영된 이번 전시는 20세기 미술사의 주요 이슈를 한 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
전시기간 동안 갤러리 내에서 출품작을 직접 그리는 ‘갤러리 드로잉’프로그램이 부대행사로 실시된다. 드로잉도구는 갤러리에서 제공하며, 제출된 드로잉 중 선별해 홈페이지에 전시하고 전시기간 중 4회(12월 29일, 1월 29일, 2월 9일, 3월 2일)에 걸쳐 문화상품권 5만원 1명, 문화상품권 3만원 3명 등 기념품을 증정한다. 월요일은 휴관하며 매주 화요일 부모와 동반한 어린이나 청소년 2인이 무료로 입장 가능한 ‘가족의 날’ 행사도 마련된다. 입장료 성인 4천원, 학생 2천원. 로댕갤러리 입장권으로 호암갤러리에서 개최하는 ‘아트스펙트럼 2001’전도 관람 가능하다. 전시장 안내는 02-2259-7781∼2(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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