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03. 2002 | 급한 볼일만 아니라면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공공화장실, 양철상자로 만든 삭막한 가판상점, 약속이나 한 듯 모든 후보자들이 똑같이 45도 각도로 하늘을 보며 웃는 선거 포스터, 심심한 편집의 국정교과서……. ‘공공’이라는 단어와 연관된 사물들은 왜 이다지도 단조롭고 촌스러울까? 때로는 공공디자인에 디자인적인 요소가 고려되기는 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이런 불만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1월 31일까지 서초동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de-sign korea’전에 기대를 걸어봄직하다.
실용적 측면과 미적 요소 조합한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이번 전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온 공공적 시각 환경에 대해 현장에서 활동중인 디자이너들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안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거리 상점, 정류장, 도시 곳곳의 자투리 땅, 거리 화장실과 같은 공적 공간의 문제부터 인문지리정보시스템, 선거 포스터, 증명서, 교과서, 사이버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9개의 프로젝트 팀으로 나눈 전시는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상상’이란 부제답게 상상력의 힘을 빌려 실용적 측면과 미적 기능을 조합한 시도가 돋보인다.
예컨대 ‘교과서’팀은 현직 국어교사들의 모임인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개발하는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의 국어교과서를 새로 디자인했다. 수용자인 아이들과 직접 논의하고 그들의 요구를 반영해 표현과 시각적 요소를 강조한 교과서는 흥미와 학습동기를 유발하는데 충분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역동성과 다원성을 반영한 이들의 작업은 획일적인 삶의 상징이었던 교과서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뒤집는다.
또한 일상의 공간을 주목한 ‘정류장’팀은 정류장을 버스나 택시를 타기 위해 시간을 죽이며 무료하게 서 있는 공간이 아닌, 시간이 머무는 공간으로 정의한다. 5분 혹은 10분, 바쁜 도시의 일상이 정지되는 정류장은 빠름과 빠름 사이의 ‘틈’을 의미하며, 이 틈은 일상의 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은빛 차양 아래 놓인 간결한 디자인의 나무벤치와 수많은 틈새 모양으로 만들어진 쉘터는 시간이 머무는 편안한 몽상의 공간이자 작은 문화공간이 된다.
상호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한 디자인 절실해
이번 전시에 참가한 디자이너들이 공통적으로 희망하는 것은 ‘대통령 선거포스터’ 팀이 취지문에서 밝힌 바 있듯, “공공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와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로 요약된다. 공공디자인의 수용자와 행정 실무자, 창작자가 서로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통로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이들의 시도는 고무적이다. 공공디자인에 대한 제안이 전시행정이나 일회적 행사에 그치기 쉽다는 점을 감안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대안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난해 5월 디자인 포럼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상상’을, 9월에는 외부연사와 각 프로젝트 팀이 참가한 심포지엄을 거친 점도 특기할 만하다.
큐레이터 전혁민씨는 전시취지문에서 “한국사회의 근대적 자주정신, 사회 구성체나 민중, 민주화 운동의 실천강령 속에 디자인은 없었다. 한낱 디자인 포럼과 기획전의 주제를 넘어 한국 디자인의 바른 정신과 태도, 그 가치와 의미를 세우고 가꾸는 발제가 돼야 한다”고 이번 전시의 의의를 밝혔다.
9개 프로젝트팀의 연구결과를 모은 전시 도록이 1월 초에 출간될 예정이며, 1월 15일부터 24일까지 오후 1시∼3시에는 출품디자이너들이 직접 참여하는 전시설명회가 열린다. 관람료 일반 2천원, 초중고 및 일반단체 1천원. 문의전화 02-580-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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