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10. 2002 | 자치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쥐불놀이…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어린이들이 즐겨하던 놀이지만, 요즘은 민속자료집에서나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퇴색해버린 것이 현실이다. 공동체 지향적인 놀이문화가 개인중심 문화로 변화하면서 명절이 와도 어린이들은 컴퓨터게임에 몰두하고, 어른들은 스키장이나 해외여행 떠나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1월 2일부터 2월 8일까지 갤러리사비나에서는 잊혀져 가는 한국의 전통놀이를 새롭게 부각시키기 위해 신년특별기획전 ‘흥겨운 우리놀이’전을 개최한다. 김봉준, 김선두, 박순철, 김용철, 오상일, 이흥덕 등 참여작가 14명은 전통놀이 장면을 개성적인 화풍으로 재해석한 작품 17점을 선보였다.
해학과 풍류 돋보이는 우리 놀이문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비슷한 주제의 기획전이 등장하는 만큼, 출품작 역시 식상할 것이라 짐작하는 건 섣부른 판단이다. 출품작들은 단순히 옛 놀이문화를 재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묘사와 과감한 생략이 공존하고, 회화부터 판화, 조각,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그 진폭이 다양하다. 같은 주제를 다뤄도 얼마든지 다른 각도로 해석할 수 있음은 ‘닭싸움’을 그린 이석조(동양화)와 김용철(서양화)의 작품을 비교하면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이석조는 눈을 부릅뜬 채 부리를 쩍 벌리고 발톱에 한껏 힘을 준 수탉의 모습을 거침없이 생략된 수묵화로 그려내 민화 풍의 활달함이 물씬 풍긴다. 반면 김용철은 두 마리 닭이 신중하게 한쪽 발을 들어 서로를 은근슬쩍 겨누는 모습을 화려한 색감의 유화로 묘사하고, 일부다처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결전의 의지를 불태우는 수탉의 비장함을 해학적으로 풀이한 글을 써넣었다. 진짜 닭들의 싸움은 아니지만, 실제 닭싸움 모양을 흉내내 한 발로만 겅중겅중 뛰며 상대방을 몸으로 밀어내 힘을 겨루는 최성환의 ‘인간 닭싸움’ 그림도 정겹다.
이밖에도 굴렁쇠놀이, 소싸움, 줄타기, 장기 등 다채로운 전통놀이를 접할 수 있는데, 각각의 작품 밑에 놀이의 유래를 설명한 글이 함께 전시돼 흥미롭다. 예컨대 ‘차전놀이’의 유래를 보면, 견훤이 통일신라 말에 왕건과 싸우기 위해 쳐들어왔을 때 안동 사람들이 견훤을 낙동강 속으로 밀어 넣었는데, 여기에서 팔짱을 낀 채 어깨로만 상대를 밀어내는 안동차전놀이가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또 이흥덕이 그린‘자치기’는 60센티미터 가량의 큰 자와 10센티미터 가량의 작은 자 한 쌍을 사용했다는 것 등 놀이법도 상세히 설명됐다.
아이들에겐 전통의 향기를, 어른들에겐 향수를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사비나 큐레이터 이희정씨는 전통명절의 의미가 퇴색한 자리를 정체불명의 기념일이 대신 메우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아이들은 전통을 경험하고,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향수할 수 있는 계기를,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는 한국문화의 진수를 선보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갤러리사비나의 개관시간은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이며 관람료는 5백원이다. 자세한 문의는 02-736-4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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