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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미니멀아트의 대선배와 유쾌한 후배들

by 야옹서가 2002. 2. 1.

 Feb. 01. 2002
| 국립현대미술관은 1월 18일부터 3월 24일까지 제7전시실에서 ‘미니멀 맥시멀-미니멀아트와 1990년대 미술’전을 개최한다. 1998년 브레멘 미술관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독일을 시작으로 스페인, 일본 등지를 거쳐 한국에서 개최되는 국제순회전으로, 1960년대 미니멀 아트를 선도했던 칼 안드레, 도널드 저드, 댄 플레빈, 로버트 모리스 등 미국지역 13명, 유럽지역 15명, 재독 일본 작가 1명 등 총 29명의 작품 35점이 소개된다.

사물의 본질로 이끄는 미니멀아트
미니멀아트 작가들은 전시대에 유행했던 추상표현주의의 마띠에르와 격정적 붓질이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여겼다. 수작업을 배제하고 작품제작을 공장에 일임하거나 단순 조립하는 제작방식 때문에 완성된 작품은 기하학적이며 몰개성적인 형태를 지녔고, 색채 역시 제한적으로 사용됐다. 작가의 상징적인 의도가 반영되지 않은 규칙적인 배열 역시 미니멀아트의 특성 중 하나다. 

따라서 전시장에 들어서면 아직 작품을 설치하는 중일까 싶을 만큼 황막하다. 작품 좌대로 쓰일법한 거울 정육면체들이 늘어섰는가 하면(로버트 모리스), 구리와 마그네슘 판으로 바둑판 무늬를 만든 깔개가 바닥에 얌전히 놓여있다(칼 안드레). 어둠 속에 색색의 불빛을 발하는 형광등만 설치한 작품(댄 플레빈)도 눈에 띈다. 공산품 전시장을 연상시키는 풍경은 작가의 발언을 배제하고, 더 이상 환원되지 않는 사물의 본질을 향해 개념적으로 파고드는 미니멀아트의 특성을 한눈에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미니멀아트 대가들의 작품을 대거 소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욱 흥미로운 작업은 초기 미니멀아트를 한번 살짝 비틀어놓은 1990년대 작가들의 작품을 발견해내는 일이다. 이들의 작품은 외형적으로는 선배들의 작품과 빼다 박은 듯 닮았지만, 풍자적인 성격을 띠거나 초기의 미니멀아트 개념을 보다 확장시켰다는 점이 다르다.

예컨대 전시장 벽면과 달걀을 광택 낸 카린 잔더의 작품은 공산품을 연상시킬 만큼 매끈하지만, 실제로는 닷새동안 특수페인트를 여러 번 칠하고 표면을 고운 사포로 수없이 문지르는 수작업을 거쳤다. 그의 작품은 작가의 개입을 배제한 기존 미니멀아트와 그렇지 않은 작품이 유사한 시각적 경험을 유발한다는 데서 충격을 가져온다. 또한 존 이삭은 시각장애인으로 분장하고 바닥에 놓인 상자를 지팡이로 더듬으며 “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널드 저드!”라고 외치는 사진을 출품했는데, 이는 미니멀아트의 외형이 일상적 사물들과 구별되지 않는 점을 유쾌하게 꼬집은 것이다.

미니멀 대가들과 참신한 후배들의 작품이 한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이추영 학예사는 “이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인 ‘미니멀’적 특성은 대량생산된 공업용품의 사용, 엄격하고 규칙적인 반복적 구조의 배열, 공업용 페인트 등에 의한 비개성적인 표면효과, 사각형태” 등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이러한 공통적인 특징 너머의 ‘맥시멀’한 양상들,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형태, 작가의 노동력이 투입된 표면, 관객의 참여로 소멸되는 작품 등은 이번 전시의 중심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솔 르윗, 다니엘 뷔렌 등의 작가가 간혹 소개된 적은 있지만, 이처럼 미니멀아트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대규모 기획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본 전시는 주목할 만하다. 1960년대 미니멀아트를 새롭게 해석한 최근의 작품을 대가들의 작품 사이에서 숨은 그림 찾듯 발견하는 것도 전시를 재미있게 보는 요령이다.

전시기간 중 2월 9일, 2월 23일, 3월 9일, 3월 23일 오후 3시에 제7전시실 입구에서 작품설명회가 열린다. 관람료 일반 2천원, 학생(18세 이하) 1천원. 제1, 2전시실 및 중앙홀에서 2월 8일까지 열리는 ‘수묵의 향기·수묵의 조형 - 한·중·일 현대 수묵화’전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문의전화 02-2188-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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