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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쇠락하는 것들을 향한 페이소스 - 주명덕 사진전

by 야옹서가 2002. 6. 21.

 
June 21. 2002 | 한국 속의 작은 중국, 인천 차이나타운. 1883년 제물포항이 개항하고 이듬해 청국 영사관이 들어서면서 한창 때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적댔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서서히 퇴락해 현재는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 차이나타운의 쇠락해가는 모습을 사진작가 주명덕의 눈으로 포착한 전시가 7월 27일까지 한미갤러리에서 열린다.

한미약품이 사진예술의 대중화를 표방하는 한미문화예술재단을 설립하면서 개관한 한미갤러리는 개관기념전 ‘차이나타운-1968.인천’전에서 주명덕의 초기작 33점을 소개한다. 작가는 1968년 《월간중앙》에 ‘한국의 이방’이란 포토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인천 차이나타운, 미군 기지촌, 무당촌, 고아수용시설 등 한국사회의 소외집단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다음의 글은 주명덕이 ‘한국의 이방’첫 번째 연재를 시작하면서 실었던 서문의 전문으로, 30여 년 전 차이나타운의 모습을 회상할 수 있게 한다.

소외집단에 대한 연민의 시선
“仁川의 西쪽 끝, 부두를 굽어보는 언덕의 ‘차이나·타운’은 異國的인 페이소스가 감돈다. 開港 이래로 華僑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1차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지금 보는 中國人村으로 완성되었다. 6·25가 터지고 홍콩과의 交易 중심이 釜山으로 옮겨가면서 쇠퇴 일로. 이제는 거의 ‘고스트·타운’이 돼버렸다. 타일로 새로 단장한 집도 있으나 異國에서 榮枯를 겪는 少數民族의 無常한 운명이 돌부리 하나에까지 스며있다.”

이 글에서도 간파할 수 있듯, 주명덕은 ‘이국적 페이소스’에 많은 부분 마음을 빼앗겼다. 이는 단순히 낯설고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비주류로 생활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소외감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의 초기작이 한국 다큐멘터리사진사의 거의 첫 부분을 장식하는 것도, 이 같은 시각이 명확히 반영된 사진이 당시로서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고 있되 유령마을처럼 생기 없이 퇴락해 가는 차이나타운의 모습은 빛 바랜 흑백사진 속에 각인됐다. 벽돌담 사이로 나무 문틀이 삐걱대고, 너덜너덜해진 종이에는 ‘三民主義 萬歲!’라는 구호가 씌어져 있다. 줄에 널린 빨래마저도 왠지 모르게 허전해 보인다. 인적 드문 거리에서 가끔 보이는 행인의 그림자는 키리코의 도시 그림처럼 불안하고 황량하다.

황량함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의 빛
그러나 주명덕이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마냥 쓸쓸한 정경만을 포착한 것은 아니다. 태양을 닮은 교표가 달린 모자를 쓰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화교학교 어린이들, 사진을 찍어대는 이방인의 모습을 포착하고서도 삐걱대는 창틀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짓는 청년의 모습은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희망이 있음을 역설하는 듯하다.

박주석 광주대 교수는 전시서문에서 “그의 초기사진은 한국의 사진 역사에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르포르타주 혹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시작이었고 표본이었다”며 주명덕 사진의 성과를 평가했다.

본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개관시간은 오전11시∼오후 8시(일요일은 6시까지)이며 자세한 문의는 02-418-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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