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1. 2002 | 6월 30일까지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여성문화예술기획·재단법인 서울여성 공동주최로 ‘제2회 여성미술제-동아시아 여성과 역사’전이 개최된다. 양성평등의식을 고취하고 여성문화 네트워크의 물리적 기반이 될 서울여성플라자 준공을 기념해 열린 이번 전시는 김수자, 윤석남, 송현숙, 그룹 입김 등 국내 11팀, 해외(중국, 일본, 대만, 태국, 필리핀) 8팀 등 동아시아 여성작가 19팀이 참여했다.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동아시아 여성현실 그려
1999년 여성작가 1백40여명이 대거 참여한 ‘제1회 여성미술제-팥쥐들의 행진’이 산발적으로 활동해온 한국 페미니즘 작가들의 힘을 규합하는 자리였다면, 제2회를 맞이한 이번 전시는 작가 수를 제한하는 대신 지역적 범위를 넓혀 동아시아 여성의 현실을 아우르는데 주목했다.
피식민 생활, 가부장적 사회문화 등 유사한 근·현대사적 배경을 공유한 동아시아 여성작가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구조적 억압을 ‘아시아인·여성·예술가’라는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과 교차시킨다. 이로써 부계중심의 히스토리(History)가 아니라, 여성적 시각에 의미를 부여한 허스토리(Herstory)를 제시하는 것이 본 전시의 목적이다.
여성미술의 한 경향이 섬세한 감수성에 기반한 내면세계의 서술에 치중하는데 비해, 이들의 작품은 강한 사회비판적 성격을 담고있다. 예컨대 민영순의 사진연작 ‘시대의 정의’는 분단국 국민이자 미국 이민자로서의 사적 경험을 한국근현대사의 장면과 교차시키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케이트 밀레트의 말을 연상시킨다.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른 타지역 작가들의 작품에서 이 같은 시각이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지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요시코 시마다의 작품 ‘적과의 동침’은 미국인과 결혼한 일본여성들의 인터뷰를 영상과 사진설치로 표현해 혼성문화 속의 갈등을 나타냈으며, 중국의 칭칭첸은 퇴폐마사지 등 쾌락주의에 물들어가는 중국의 현실을 돼지의 맨살을 마사지하는 퍼포먼스비디오로 유머러스하게 풍자했다.
서구적·부계중심적 가치를 대치할 새로운 행로 모색
또한 2000년 9월 29일 종묘공원에서 여성주의미술행사 ‘아방궁 종묘점거프로젝트’를 개최하려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측의 실력행사로 전시가 무산된 그룹 입김의 싱글채널비디오도 전시돼 사회적 여성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표현자유의 침해’라는 입김 측과 ‘민족정서에 반하는 행사’라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측의 대립이 영상으로 펼쳐지고, 법정투쟁을 거쳐 2002년 5월 12일 조정심의위원회의 조정포기 결정이 내려지기까지의 경과보고서도 리플렛으로 묶여 나왔다.
앞서 언급한 이들과 달리 은유적인 방식을 구사하는 작가들도 나지막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관람객을 부른다. 붉게 물든 거대한 뿌리를 그려 상처입은 생명의 근원을 그려낸 김인순, 나혜석·허난설헌·이매창 등 깨어있는 삶을 살았던 옛 여성들의 목조각으로 표현한 윤석남 등 눈에 익은 국내작가들의 근작을 볼 수 있다.
전시기획위원장을 맡은 미술평론가 김홍희는 “서구적, 부계적 가치를 상대화할 여성 특유의 창조적, 미학적 실천으로 아시아 여성미술의 새로운 생성적 전통과 역동적 정체성을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전시의 의의를 밝힌 바 있다. 차후에 개최될 제3회 여성미술제는 구미권 작가들까지 포괄하는 여성미술축제로 확장될 전망이다.
본 전시는 무료 입장할 수 있다. 자세한 문의는 02-734-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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