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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패러디로 본 20세기 미술사-마티아스 쾨펠전

by 야옹서가 2002. 7. 5.

 Jul. 05. 2002
|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장르는 아마 패러디일 것이다. 작가가 아무리 원본을 재치있게 뒤틀어놔도, 보는 이가 정작 원본이 어떤 모양새였는지 모른다면 발상의 기발함을 맘껏 즐기며 작가와 함께 웃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한독일문화원에서 7월 26일까지 열리는 ‘현대와의 작별-누가 브란덴부르크 문을 두려워하나?’ 역시 20세기 미술사를 알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참맛을 즐길 수 있는 전시다.

독일작가 마티아스 쾨펠(65, 베를린대 교수)은 이번 전시에서 브란덴부르크 문을 모티브로 브라크, 피카소, 칸딘스키, 클레, 몬드리안, 샤갈, 폴록 등 대가 20명의 화풍을 패러디한 연작 20점을 선보인다. 세기말을 기려 1999년부터 제작된 작품들은, 한눈에 20세기 미술사의 흐름을 꿸 수 있을 만큼 대가들의 화풍을 적절히 차용해 눈길을 끈다.

브란덴부르크 문과 현대미술의 공통점
1791년 베를린에 세워진 브란덴부르크 문은 구 동독과 서독의 경계선상에 위치해 분단의 상징으로 각인됐던 곳. 쾨펠은 독일 통일과 함께 구시대의 기념비로 남게 된 브란덴부르크 문에, 더 이상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은 20세기 미술을 연계시켜 풍자했다. 위압적인 자태로 독일제국의 영화를 상징했던 브란덴부르크 문이 이제 여행사진의 배경으로 전락한 것처럼, 현대미술의 권위 역시 적나라한 웃음의 소재가 됐다.

쾨펠의 손에서 변주된 대가들의 화풍이 마치 20세기를 작별하는 촌스러운 기념사진처럼 보이는 것은, 각각의 작품이 모두 극사실적으로 그려진 하늘그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이발소 그림’으로 불리는 키치적 양식과 현대미술의 역사를 다시 쓴 거장들의 시도가 한 화폭 위에서 충돌할 때, 시각적 충격이 주는 즐거움은 만만치 않다. 

예컨대 피카소를 패러디한 ‘나는 구하지 않고 찾는다!’(1999)를 보면 브란덴부르크 문의 엄격한 고전양식은 온데간데없고, 지붕에 놓인 4두마차는 게르니카를 연상시키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리히텐슈타인의 만화풍으로 단순화되는가 하면, 또다른 그림에선 폰타나가 시도했듯 허공을 죽 그은 칼자국으로 묘사됐다. 달리 풍의 그림에선 한 구석에 찌부러져 불타는 불쌍한 신세가 됐고, 심지어 물감통을 든 폴록이 그림 속에 직접 등장해 드리핑 기법으로 형태조차 불분명한 브란덴부르크 문을 그려놓기도 했다.

숨은그림찾기 하듯 화가들의 이름을 맞추는 즐거움
이처럼 한눈에 원본을 알아보기 쉬운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얼핏 봐서는 누구 작품의 패러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그림도 있다. 관람자의 미술사적 지식에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칸딘스키의 추상회화, 뉴먼의 색면회화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작가 이름을 대부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상당히 고난이도에 속하는 훈데르트바서, 폴리아코프의 작품까지 맞추기란 쉽지 않다. 전시장에 들러 작품 감상도 하고, 자신의 감식안이 몇 점인지 시험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본 전시의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까지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자세한 문의는 02-754-9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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