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12. 2002 |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아트선재센터는 8월 18일까지 중견사진작가 배병우(52, 서울예술대학 교수) 개인전을 개최한다.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은은한 흑백사진으로 한국의 자연을 서정적으로 그려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고향 여수의 향일암, 제주 오름 등을 찍은 근작 1백여 점을 선보인다.
배병우의 작품은 첫눈에 확 들어오는 수려한 풍경사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관광엽서에서 흔히 보이는 것처럼 기교를 총동원한 구도와 현란한 색채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배병우의 사진은 간을 안 맞춘 음식 마냥 심심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역설적으로 이처럼 담백한 표정을 하고있다는 점에서 다른 사진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되짚어볼수록 담백한 사진의 맛
흑백으로 절제된 색채, 연출하지 않은 듯 사물을 툭툭 잘라낸 구도는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특히 두루마리 족자처럼 세로로 긴 화면에 담은 산·바위 연작은 하늘로 치솟고자 하는 대상의 성향을 드러내는 데 적합하다. 이는 배병우가 15년간 작업해온 ‘소나무 연작’때부터 작가가 즐겨 쓰는 구도다. 흔히 가로구도로 표현하는 산과 하늘, 바다를 과감히 세로구도에 담아 파격을 실현하고, 다시 이들을 나란히 전시해 병풍처럼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작가의 고향인 여주도 그가 작품의 대상으로 애착을 지니고 있는 곳이지만, 배병우 사진의 매력은 제주의 바다와 산을 담은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검은색 물감을 스프레이로 뿜어 그려낸 듯 은은하고 부드러운 명암의 변화를 담은 제주 고유의 기생화산 오름, 가까운 곳의 묵직한 어둠에서부터 잔물결이 가볍게 넘실대며 춤추는 먼 바다의 모습까지 한 장에 담은 추자도 앞 바다 풍경은 관람객의 눈을 깊숙이 끌어당긴다.
음과 양의 무한한 조화를 담은 진중한 풍경
한편 “물과 구름은 음과 여자를 상징하고, 산과 바위는 양과 남자를 상징한다”는 작가의 의도는 2층에 수직을 지향하는 산·바위 사진을, 3층에 수평을 지향하는 바다·하늘 사진을 전시하는 것과 같은 공간 설계에도 담겨 있다. 대지에 발을 딛고 위를 향해 치솟아 올라오는 양기와, 잔잔하고 차분하게 대지를 덮어 감싸는 음기의 조화가 전시공간이라는 큰 맥락 속에서도 이뤄지는 것.
전 동경 근대미술관 큐레이터 치바 시게오는 배병우의 사진을 가리켜 “조선시대 겸제의 진경산수화에서 찾을 수 있는 이상화된 자연의 아이콘을 끌어내면서, 화면 위에서 대상들의 형태를 의도적으로 추상화하여 강한 회화성을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관람료 일반 2천원, 학생 1천원. 주말 오후 2시, 4시에 가면 도슨트의 전시설명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다. (월요일 휴관) 자세한 문의는 02-733-8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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