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19. 2002 | 인사동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대학교 동문전’류의 전시만큼이나 지리멸렬한 것이 ‘한·○작가 초대전’과 같이 나라이름이 사이좋게 붙어있는 전시다. 주제기획전이 아닌 이상 전자와 같이 학연·지연으로 묶인 전시나, 후자처럼 특정 국가에서 임의로 추출된 작가들이 함께 전시한다는 것 외에 별다른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전시는, 자칫 산만하거나 지루해질 위험을 늘 안고 있다.
쌈지스페이스에서 7월 31일까지 열리는 ‘Korean Air France’전 역시 쌈지스페이스가 선정한 한국작가 6명과 프랑스 국립미술학교가 선정한 프랑스 작가 5인의 ‘한·불작가 교류전’이다. 멀리 떨어진 두 지점을 가장 빠르게 연결하는 교통수단이 비행기임을 감안하면, 대한항공(Korean Air)과 에어프랑스(Air France)가 중첩된 전시명칭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활동해온 양국 작가들의 교집합을 명쾌하게 전달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문화적 혼성교배의 현장
양국 작가들의 작품경향을 보면 출신국가에 따른 색채가 강하게 반영되기보다는 문화적 혼성교배의 경향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경우, 서울과 부산의 옥상 물탱크 색깔을 비교분석한 사진으로 지리적 심리현상을 연구한 박용석, ‘공동경비구역 JSA’의 판문점 세트사진을 기성품 핸드백에 넣고 분단현실이 문화상품으로 소비되는 현장을 풍자한 박찬경을 제외하면 한국적 현실을 기반으로 발언하는 작가가 드물었다.
한편 프랑스 측에서는 레바논 출신의 니나 에스베, 한국 출신의 슬기 리 등 여러 문화권 속에서 성장해온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 중에서도 니나 에스베는 13세기 초 아랍원전에서 발췌한 남녀 성기에 대한 설명을 한국어로 들려주면서 현대사회 속의 성 억압의 역사가 시대와 장소를 떠나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설파했다.
어차피 한 비행기에 동승하는 사람들이 같은 목적을 갖고 탑승하는 것은 아닌 만큼, 이들이 서로 각자의 언어로 서로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도 잘못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한국과 프랑스 작가들이 ‘교류’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였을 때, 단순히 작품만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적극적인 의사교환을 통해 전시 자체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완결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회성 교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 문화가 한 자리에서 뒤섞이고 충돌하면서 유기적으로 화합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교류전’이 드문 만큼, 이는 미완의 과제로 남는 부분이다.
각자의 시각만을 일방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은 아쉬워
쌈지스페이스 측은 웹사이트를 통해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의 현대미술을 파리 중심부에 소개하여 한국작가의 국제적 진출을 도모하고 프랑스의 현대미술을 한국에 직접 소개하여 서구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전시가 끝나면 9월 3일부터 30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동일한 내용으로 한 번 더 전시가 열리게 된다.
전시가 열리는 쌈지스페이스의 개관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전시 관람료는 무료다. 자세한 문의는 02-3142-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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