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6. 2002 | 타인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 극한에 달한 상태는 바로 살인이다. 칼부림으로 얼룩진 살인사건현장은 대중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경우가 있어도 흔히 모자이크로 처리된다. 피가 튀고 살점이 흩어지는 현장 모습이 충격적이기도 하거니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사생활도 존중돼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을 끔찍하다 말하는 사람들도 한편으론 그 모자이크를 상상의 힘으로 벗겨보곤 한다. 폭력적인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런 죽음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것이 인간 심리다.
죽음에 대한 거부와 끌림의 양가감정
충무로에 위치한 스페이스 사진에서 8월 1일까지 열리는 사진작가 김진형의 ‘범인은 사진 속에 있다’전은 이처럼 생명이 유린되는 폭력의 현장에 초점을 맞췄다. 현장감식사진 촬영지침서의 제목에서 따온 전시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참혹한 살인사건 사진이 여과없이 묘사됐다. 배를 난자당한 임산부, 교복차림으로 쓰레기장에 버려진 여고생, 교살된 흔적을 목에 선명히 남긴 채 입을 벌리고 죽은 여성, 쓰레기 사이에 유기된 태아, 습기어린 비닐에 싸인 시체, 잘려나간 손가락과 귓불 등 충격적인 범죄현장이 대부분이다.
자칫 사회적 물의를 유발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이 사진들은 실제상황과 흡사한 연출사진이다. 이를 위해 김진형은 범죄심리학자 홍성열 교수,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형사들에게 자문을 얻어 실재감을 살렸다. 전시된 사진은 범인들이 현장에 침입할 때의 시각을 현장감식사진이 재현하듯, 원경에서 근경으로 서서히 접근한다. 이렇게 작가가 연출한 사진을 현직 형사가 역추적해 작성한 가상의 현장감식보고서도 함께 전시됐다.
김진형이 살인현장을 자신의 작품영역에 받아들인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참혹한 죽음의 현장을 가능한 한 현실에 가깝게 재현한 사진으로 폭력의 파괴적인 측면을 고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사사진이 ‘범인검거를 위한 도구’라는 기능적 측면이 아닌 예술의 영역으로 옮겨왔을 때 변이되는 사진의 위상에 대한 탐구다.
사진이 다룰 수 없는 금기 영역에 대한 질문
실례로 전시된 사진들을 둘러보면 최대한 현장감식사진의 어법을 모방해 연출한 사진과 함께,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묘사하는 것인지 애매한 미학적 사진이 작품 사이사이에 첨가됐다. 이를테면 길바닥에 쓰러진 임산부의 사체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의 흑백사진으로 촬영해 정적인 영화스틸 같은 느낌을 준다. 가장 극심한 폭력의 현장이지만 이사진에서는 피비린내가 제거되고 흑백사진의 은은한 톤만 남았다. 변기 위에 버려진 귀의 살점 일부처럼, 얼핏 보아서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형상도 등장한다.
김진형은 연출된 사진을 통해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기존의 관념을 조소하는 한편 폭력의 본질을 보여주고자 했다. 작가 스스로 밝힌바 있듯, 사진은 “인간을 대하는 폭력적 태도를 그렇게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모방된 현장감식사진을 단순히 선정적인 소재주의로 치부할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본 전시의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료는 무료다. 자세한 문의는 02-2269-2613.
'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놀이와 그림 감상을 하나로-‘상상 속의 놀이’전 (0) | 2002.08.02 |
---|---|
오감으로 느끼는 북아트의 매력-‘감상하는 책’전 (0) | 2002.07.26 |
사진예술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제2회 사진영상페스티벌 (0) | 2002.07.19 |
한 비행기 탄 한·불 작가들의 동상이몽-Korean Air France (0) | 2002.07.19 |
예술로 다시 쌓은 화합의 바벨탑-바벨2002전 (0) | 2002.07.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