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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마지막 창작혼을 불사른 노작가의 궤적-‘윌렘 드 쿠닝’전

by 야옹서가 2002. 8. 30.


Aug. 30. 2002
| 1948년, 뉴욕 찰스 이건 화랑에서 열린 윌렘 드 쿠닝의 첫 개인전에 모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미적 기준으로는 거의 광란에 가까운, 거친 흑백 궤적이 화폭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가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쏟아낸 ‘여인’ 연작은 강렬한 붓질과 색채로 신체를 해체해, 격렬한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 윌렘 드 쿠닝의 만년작 
1950년대 잭슨 폴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로 불린 윌렘 드 쿠닝의 만년작이 국내에 소개된다. 가회동 갤러리서미는 9월 12일까지 열리는 ‘윌렘 드 쿠닝’전에서 유화 5점, 드로잉 11점등 총 16점을 선보인다. 대개 드 쿠닝의 작품은 1950∼60년대 작을 중심으로 논의되지만, 본 전시에서는 1980년대 전후 작품을 비중 있게 소개했다.

작품의 면면을 보면, 유화 소품 ‘물 속의 여인’(1967)을 제외한 1980년대 작품에서 초기의 ‘여인’ 연작처럼 과격하게 해체된 신체는 찾아보기 어렵다. 채 마르지 않은 유화물감이 캔버스 위에서 서로 몸을 섞으면서 풍기는, 끈적끈적하고 뜨거운 격정도 사라졌다. 종횡무진 화폭을 가로지르는 물감의 궤적에서 유발되는 속도감과 생생한 물질감 역시 희미하게 느껴질 뿐이다.

대신 순백의 캔버스를 배경으로 부드러운 자유곡선들이 그 빈 자리를 메웠다. 이전 작품에서 난폭하게 분해됐던 신체의 윤곽은, 황색과 적색을 주조로 한 암시적인 선으로만 존재한다. 원색과 탁색이 뒤섞이고, 원시적이고 과격한 표현으로 묘사된 여인상이 화폭을 메웠던 전작들을 연상하면, 전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전성기의 드 쿠닝 작품을 마음 속에 깊이 아로새겼던 사람이라면 이 같은 변화는 당혹스러울 법하다. 이처럼 극심한 화풍변화 탓인지, 드 쿠닝의 만년작은 주 활동무대였던 미국에서조차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드 쿠닝이 사망한 해인 1997년에서야 뒤늦게 그의 만년작을 다룬 뉴욕현대미술관 전시가 개최됐을 정도였다.

삶의 굴곡을 거쳐 다시 피워 올린 예술의지
 그러나 이는 그가 겪은 개인사와도 일정 부분 관련이 있을듯하다. 드 쿠닝은 파격적인 화풍이 불러온 논란 속에서 정신적 혼란을 감수해야 했을 뿐 아니라, 아내와 결별했고 1970년대에는 알콜중독에까지 빠진 바 있다. 그렇지만 결국 그는 1978년 아내와 재결합하면서 안정을 찾게 된다. 새로운 화풍을 시도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드 쿠닝은 이처럼 굴곡 많은 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냉소와 격정이 가득 찬 화폭을 비우고, 마지막 남은 삶의 여백을 온화한 빛과 색채로 채웠다. 1980년 알츠하이머병 진단까지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창작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지막 시기 작품들이 이처럼 고요하고 따뜻한 느낌인 것은 상당히 독특하다.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이승민씨는 “그동안 1940∼50년대 작품 위주로 소개됐던 드 쿠닝의 작품세계를 1980년대까지 확장시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본 전시의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자세한 문의는 02-3675-8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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