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30. 2002 | “회화가 사랑이라면, 포스터는 강간에 비유된다.” 와인광고포스터 ‘뒤보네’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시각디자이너 카상드르(A.M.Kassandre)의 이 말은 과격하지만, 포스터가 전파하는 메시지의 침투력을 간명하게 나타낸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층에서 9월 16일까지 열리는 ‘20세기 세계의 포스터 1백년’전은 무차별적으로 눈과 마음을 파고들며 때론 감동을, 때론 충격을 주는 포스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일본 다마미술대학 미술관에 보관된 타케오 사의 포스터컬렉션 3천2백여 점 중 1백20여 점을 엄선한 것이다. 특히 ‘호소, 유행, 상업, 기업, 흥미, 이벤트, 예술과 디자인’의 일곱 가지 섹션으로 나눔으로써, 홍보매체적 성격과 시각예술로서의 성격을 공유한 포스터의 두 얼굴을 함께 볼 수 있다.
포스터-홍보매체로서의 얼굴과 시각예술로서의 얼굴
전시된 작품 수만큼이나 포스터의 성격이 다채롭다. 포스터의 선구자로 불리는 쥘르 슈레의 아르누보 스타일 포스터(1879)부터 시작해, 선동적인 엘 리시츠키의 정치색 짙은 포스터, IBM·코닥 등 기업홍보 포스터, 반핵·환경보호와 같은 메시지를 담은 공익포스터, 순수미술작가들의 아트 포스터에 이르기까지 그 진폭이 넓다.
표현방식도 직설적인 것부터, 동음이의어를 이용하거나 재치 있는 유머를 담은 것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어 삭발한 사람 머리를 수박 따듯 삼각형으로 파낸 마약반대운동 포스터 ‘금단의 열매’(1995)는 직설적인 사진 한 장만으로도 어떤 구호보다 강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표현은 직설적이지만 컴퓨터 합성으로 수박과 사람의 머릿속을 합성해 거부감을 줄였다.
충격과 감동, 재치와 유머 넘치는 종이 한 장의 미학
한편 IBM사가 기업이미지 제고를 위해 시각디자이너 폴 랜드에게 의뢰한 포스터는 단순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검은 바탕에 눈 그림, 벌 그림, 대문자 M만 덜렁 새겨진 이 포스터는, 가만히 살펴보면 누구라도 IBM이라는 음성언어를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세 글자 중 I와 B를 각각 눈(eye), 벌(bee)의 모양으로 대치한 재치도 재치지만, 줄무늬 벌 그림을 배치시키고 IBM 특유의 줄무늬 로고 M을 순차적으로 이어 시각적으로 IBM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시각디자이너가 제작한 포스터 못지 않게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포스터도 눈길을 끈다. 페터 베렌스의 ‘독일공작연맹전’포스터(1914)부터 막스 빌이 디자인한 ‘미래파’전 포스터(1950), 마르셀 뒤샹이 디자인한 ‘다다’전 포스터(1953) 등을 눈으로 훑다 보면 20세기 현대미술사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상업광고와 고급예술의 이미지가 혼재하는 팝아트 작가들의 작품-예컨대 앤디 워홀의 제5회 뉴욕영화제 포스터(1967)나 키스 해링의 ‘앱솔루트 보드카’(1986) 등의 작품도 흥미롭다.
본 전시를 기획한 김혜경(김혜경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이번 전시는 두성종이(주)가 기업메세나의 일환으로 주관한 것으로, 거래처인 타케오 회사 소장품 중에서 엄선한 것 ”이라고 설명하고, “한국에서의 포스터는 불조심, 반공 등의 계몽적 이미지가 강하게 인지돼 그 이해의 폭이 좁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의 다양한 포스터도 모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시취지를 밝혔다.
입장료 성인 3천원, 학생 1천5백원. 문의전화 02-738-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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