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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다중시점으로 포착한 리얼리즘의 세계-최진욱전

by 야옹서가 2002. 10. 4.

Oct. 04. 2002
| 영상예술과 설치미술이 급부상해온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회화는 죽었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서 회화의 복권을 논하는 작가들도 여전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10월 20일까지 개인전을 여는 서양화가 최진욱(47, 추계예술대학교 교수) 역시 ‘회화의 종말’과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경계선상에서 돌파구를 모색해온 작가 중 하나다. 시류에 관계없이 평면회화에 매진해온 작가는 통산 6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다중시점으로 포착한 리얼리즘 회화를 선보인다.

사실적이되, 회화성을 강조한 ‘그림 같은 그림’
최진욱의 그림은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하지만, ‘사진 같은 그림’으로서의 정교한 사실성보다 회화작품 특유의 회화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굵고 힘있는 붓 터치로 대상의 매스를 잡아내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사실적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붓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화면은, 그의 작업이 단순한 현실의 모사가 아닌 ‘그림’임을 은연중에 강조한다.

회화성의 강조는 작가가 보이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대신, 스냅사진 찍듯 약간의 시점변동을 주면서 그려낸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진욱의 근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화면을 시각적으로 꼴라주한 듯한 화면 구성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마치 여러 장의 사진을 수작업으로 이어 붙여 시점이 조금씩 어긋나는 파노라마사진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사실적인 묘사에만 집중했다면 심심해졌을 화면에 미세한 어긋남이 첨가되면서, 작품 전면에 긴장감이 감돈다. 작가의 눈이 대상을 한 단계씩 더듬으며 완성해나갔다는 느낌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관람자는 이미지가 어긋난 부분의 경계선마다 작가의 눈이 밟아나간 길을 체험하며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을 한 화면 안에서 체험하게 된다.

예컨대 1999년작 ‘누가 이 그림을 훼손하는가?’에서 작가는 전통건축물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흔적을 스냅사진 찍듯 포착하면서 시점의 이동과 시간의 움직임을 표현했는데,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형상이 중첩되기도 하고, 때로는 잘려나가기도 하면서 불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담은 그림을 만들어냈다.

미세한 어긋남이 재연하는 시각의 궤적 
최진욱이 굳이 시각적 꼴라주를 시도하는 까닭은, 의도적으로 붓자국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자’로서의 강한 자의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특히 초기작에서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입회자화상처럼 작품 속에 빈번히 등장하는 긴 거울의 존재는 의미심장하다. 작업중인 작가의 모습을 여과 없이 비추는 이 거울은 작업실 내의 평범한 소도구처럼 보이지만, 사물로 치환된 작가의 눈과 같다. 작가의 육체가 거울이라는 사물로 연장되고, 다시 그림 속에 녹아드는 과정은 작가가 카메라의 렌즈처럼 시점을 이동하며 그린 그림과 동일시되면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신체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된다.

미술평론가 심광현은 전시서문에서 “그림 그리기는 “손으로 보고, 눈으로 만지며, 손과 눈으로 감싸안기”라는 ‘공감각적 실천’”이라며, 시각-생태학의 실천이란 맥락에서 최진욱의 회화를 고찰했다.
본 전시의 입장료는 일반 2천원, 학생 1천원. 자세한 문의는 02-72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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