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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웃음 뒤에 찾아오는 페이소스-‘funny sculpture·funny painting’전

by 야옹서가 2002. 10. 11.

Oct. 11. 2002
| 10월 24일까지 평창동 갤러리세줄에서 열리는 ‘funny sculpture·funny painting’전은 박영균(회화), 천성명(조각), 노석미(회화), 홍인숙(판화) 등 30대 초·중반 작가 4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다. 전시명이 풍기는 이미지는 마냥 가볍고 흥미로운 것 같지만, 막상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하나같이 희화화된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희극무대를 방불케 한다. 손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배시시 웃는 주책스런‘늙은 언니’, 머리에 꽃을 꽂고 철퍼덕 주저앉은 회사원 아저씨, 실연의 충격으로 가슴에 구멍난 처녀, 아이인지 어른인지 모를 땅딸막한 애늙은이…만화 속에서 방금 뛰어나온 듯 과장되거나 축소된 형태, 화려하고 유치찬란한 키치 이미지가 만발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건, 그 속에 우리들 보통시민의 초상이 담겼기 때문이다.

기괴하고 희화화된 모습의 등장인물
먼저 홍인숙의 판화 ‘older sister’연작을 보자. ‘젊은 오빠’와는 다른 한 극에 서 있는 여인들의 모습은, 이나중 탁구부원들의 여자친구라 해도 믿어질 만큼 엽기적이다. 스포츠카에 올라탄 야타족 대신 추리닝 입은 중년남자와 함께 장난감 목마를 타고 주름 자글자글한 미소를 짓는 이 언니는, 한편으론 우습지만 한편으론 서글프다. 나이를 잊은 채 삐삐처럼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머리에 꽃을 꽂고 귀여운 포즈를 취하는‘늙은 언니’-이미 육체에서 사라진 젊음의 빈자리를 교태로 땜질하려 애쓰는 그녀의 예쁜 짓은 젊음에 대한 무조건적 갈망을 유쾌하게 비판한다.

홍인숙의 늙은 언니 이미지가 ‘젊음’에 대한 맹목적 집착이라면, 천성명의 애늙은이 이미지는 보다 심리적이다. 예컨대 설치조각 ‘소년, 잠들다’에 등장하는 소년(?)은 어린이의 몸에 중년의 뱃살, 조로한 얼굴이 기묘한 조합을 이룬다. 흑백으로 정제된 채색 탓에 보다 정적으로 느껴지는 그의 조각은, 시간과 감정의 흐름이 묘하게 뒤틀려버린 자폐적 순간을 담는다.

현학적인 개념유희 벗어 던지고 일상의 고민 풀어내
 ‘소년, 잠들다’에서 자그마한 아동용 흔들의자에 앉은 이의 몸은 늘어진 테이프처럼 흘러나오는 자장가에 맞춰 천천히 흔들린다. 집 모양의 구조물 속에서 홀로 왕복운동을 하는 존재, 비록 소년의 몸을 하고 있지만, 아버지만큼 이 조각과 닮은 사람이 있을까. 현실의 무게는 아버지의 얼굴에 주름살만 남긴 채, 그의 육체까지도 조그맣게 우그러뜨린 듯하다. 이 작품은 집 모양의 구조물 속으로 머리를 디밀고 들여다보아야만 볼 수 있는데, 무턱대고 가까이서 보겠다고 발부터 덥석 집 안에 들여놓았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역시 집은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공간일 수밖에 없으니. (그 봉변은 직접 체험해보시기를)

이밖에도 386세대 아저씨의 소박한 일상탈출을 그린 박영균의 회화 연작 ‘86학번 김대리’, 키치적인 일러스트레이션과 수제인형을 제작해온 노석미의 회화 등이 전시된다. 위트를 섞어 실연에 얽힌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낸 노석미의 그림소설은 작가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본 전시의 관람은 무료다. 문의전화는 02-391-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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