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11. 2002 | 문자추상과 군중 연작으로 널리 알려진 고암 이응노. 그의 회화를 보면 사람을 닮은 듯, 글자를 닮은 듯 다의적인 형상이 백지 위를 종횡무진 내닫는다. 힘찬 먹선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한껏 뭉쳤다가, 배경색과 먹선이 어우러지는 과정에서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는 묵과 색의 한바탕 춤판.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에서 12월 21일까지 열리는‘60년대 이응노 추상화, 묵과 색’전에서는 고암이 파리체류 초기인 1962∼67년 사이에 제작한 추상화 소품 1백20여 점을 소개한다. 모두 일반인에게는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미공개 작품. 흔히 알려진 고암의 작품은 대작 위주지만, 오랜 시간 다독이듯 쌓아나가는 대작과 달리, 스케치로 일기를 쓰듯 그려진 작품들은 고암의 체취를 보다 극명히 보여준다.
정겹고 소박한 ‘글씨로 그린 풍경’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풍경’이란 제목으로 집약되는, 아직 서술적 형상이 잔존해있는 추상화, 그리고 보다 응축되고 단순화된 ‘컴포지션’연작이 그것이다.
이중 전자에 속하는 풍경 연작은 추상의 형태를 빌린 서술적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담지 않은 그림이 어디 있으랴만, 시장 사람들의 모습, 소박한 축제의 정경, 동물원에서 지나쳤던 여러 가지 동물들의 추상화된 모습 등 우리가 살붙이고 살아가는 이 땅의 풍경은 정겹기 그지없다. 고암의 한 작품 제목처럼 ‘글씨로 그린 풍경’ 격이다. 해를 등지고 공놀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해를 갖고 노는 사람’을 연상하는 재치도 돋보인다.
선적 요소 강조한 ‘풍경’ 연작, 추상성 강화된 ‘컴포지션’ 연작
앞서 언급한 풍경 연작이 선(線)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고암 화풍이 동양화의 발묵과 필력에서부터 기인한 것임을 연상시킨다면, 후기 문자추상의 시원을 보여주는 ‘컴포지션’ 연작은 면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고도의 추상성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평면적인 화면을 얼기설기 덮은 형상들은 점차 조밀해지면서 2차원의 화폭 속에 깊이와 공간을 만들어낸다.
박인경 이응노미술관 관장은 전시서문에서 “고암의 작품세계를 흔히 60년대를 추상시대, 70년대를 문자 시리즈, 80년대를 인간 시리즈라고 말하지만, 이번에 전시되는 60년대 작품 속에는 풍경, 사람, 문자의 형태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며 본 전시의 의의를 설명했다.
관람료 성인 2천원, 학생 1천원(목요일 무료관람). 월요일은 휴관한다. 자세한 문의는 02-3217-5672.
'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식의 심층으로 향하는 문과 계단-이명진의 ‘relationship’전 (0) | 2002.10.18 |
---|---|
웃음 뒤에 찾아오는 페이소스-‘funny sculpture·funny painting’전 (0) | 2002.10.11 |
다중시점으로 포착한 리얼리즘의 세계-최진욱전 (0) | 2002.10.04 |
자연친화적 문화예술공동체의 청사진- 헤이리 건축전 (0) | 2002.10.04 |
마음 속에 누구나 간직한, 바로 그 길-‘My favorite way’전 (0) | 2002.09.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