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18. 2002 | 시각장애인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을 생각한다. 대중매체에서 묘사되는 시각장애인이나, 비장애인들이 주변에서 마주치는 모습들은 그렇게 관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각장애의 범주는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다. 예컨대 교정시력 0.05 미만으로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는 전맹이지만, 어둠과 밝음만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광각, 눈앞에서 손을 움직일 때 알아볼 수 있으면 수동, 1m 앞에 놓인 사물의 수를 헤아릴 만큼 보이는 상태를 지수라 한다. 볼 수는 있으나 교정시력 0.3 미만으로 보통 크기의 책 글자를 읽을 수 없는 상태는 약시다. 이처럼 세분화된 시각장애의 상태를 인지하고 적절한 시기에 합리적인 감각발달훈련이 이뤄지면, 눈으로는 세세히 볼 수 없는 세상도 공감각을 활용해 느낄 수 있기 마련이다.
현역 예술가와 한·일 시각장애학생들이 만들어낸 공동프로젝트
11월 30일까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1층 로비에서 열리는 ‘2002우리들의 눈(Another Way of Seeing)’전은 한·일 시각장애학생들이 체험한 조형훈련의 생생한 결과물이다. 1998년 첫 전시 이후 연례행사로 정착해 올해로 4회 째를 맞이한 본 전시는 현역 예술가들이 기획하고 1년 간 서울맹학교, 충주성모학교, 한빛맹학교 등 시각장애특수학교 학생들이 동참하는 예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한국 외에 일본측도 참여해 양국의 시각장애학생 미술활동의 사례를 비교할 수 있다. 20여 년 간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전시를 기획해온 동경 톰갤러리 소장작을 비롯해 고베시립맹학교, 오키나와맹학교 출신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며, 최근작으로 2001년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도 선보인다.
출품 장르는 조소, 회화, 직조 등 다양하지만, 그 중 주류를 이루는 것은 점토를 이용해 살을 붙이고 형태를 만들면서 촉각을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조소활동이다. 모든 조형활동은 공감각적 인지능력과 감성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작품을 완결하면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조형활동의 주된 효과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편견 없이 하나되는 세상
예컨대 충주성모학교 학생 이은미가 빚어낸 작품 ‘도전’은 소박하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유약을 바르지도 않고 특별한 기교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정점으로 향할수록 첨예하게 긴장되는, 상승하는 불꽃의 이미지 속에 현실에 대한 도전의지가 스며있어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한편 또다른 약시아동 이상지가 제작한 ‘장애우를 업고 가는 사람’은, 표현방법은 서툴지만 솔직 담백하다. 대지의 화신처럼 강하고 튼튼한 두 다리로 서 있는 사람과 그의 등에 업혀 쉬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편견 없이 하나되는 세상을 꿈꾸는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이밖에도 일본 고베시립맹학교와 오키나와맹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작품은 점토 외에 간단한 태피스트리, 모헤어를 이용한 입체작품 등 다양한 조형재료를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와 뒤이은 아프간 보복공습 소식을 듣고 썼다는 일본 시각장애학생의 점자시도 선보인다.
본 전시의 관람은 무료이며, 개관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다(일요일 휴관). 문의전화 02-3277-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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