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25. 2002 |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단 한 가지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이 사실은 종종 부정되곤 한다. 죽음에 대해 언급하기를 터부시하는 것은 일상이 됐고, 심지어는 냉동인간이 되기를 자원하는 등 현대과학의 힘을 빌려 죽음에 거부하기도 한다.
안국동 갤러리사비나에서 11월 10일까지 열리는 서양화가 안창홍의 ‘죽음의 컬렉션’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에게나 털어놓기는 꺼리는 죽음의 이미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채집했다. 안창홍은 학력과 인맥이 작가의 암묵적 요건으로 꼽히는 미술계에서 독학으로 작가가 된 독특한 케이스로, 17차례의 개인전을 치르면서 일상 속의 폭력과 죽음에 대해 언급해왔다.
죽음과 폭력, 관음의 이미지
이번 전시는 그동안 축적돤 안창홍의 작업경향이 집약된 전시이면서,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이 혼재돼있다. 예컨대 낡은 사진에 리페인팅하는 방법으로 죽음의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다룬 ‘기념촬영’연작은 검은 물감으로 퀭하니 안구를 지운 예전의 ‘가족’ 연작과 같은 맥락이지만, 보다 공격적이다. 이전 작업에서 암시적으로 비치던 죽음의 그림자는 피 같은 붉은 물감의 난장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거나, 눈을 뜨고 있다해도 막 숨이 넘어가 눈이 뒤집힌 사람의 형용이다. 조용히 무덤가로 사라지려는 죽음의 등을 돌려세워 옷을 벗기고 채찍으로 후려갈긴 듯한 이 그림들을 유쾌한 마음으로 보고 있기란 힘든 일이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을 직시하기 어렵듯이.
대상을 까발리는 행위를 통해 쾌감을 얻는 안창홍의 그림에서, 죽음에 대한 관음과 함께 성에 대한 관음증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 중 하나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한몸처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이 부류의 작품으로 ‘시선’연작을 꼽을 수 있다. 싸구려 소시지를 연상시키는 분홍빛 살을 빛내는 여인들은 신체 일부를 거리낌없이 드러내며 관람자를 응시한다. 작가 자신마저도 자화상의 형태로 등장해 옷을 벗어 던졌다. 허벅지의 상처에서 구더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오른손에 든 평붓에서 피처럼 검은 물감을 뚝뚝 흘리는 안창홍의 자화상은 다부진 자세로 서서 알몸으로 관람자를 맞이한다.
고요함과 격정이 공존하는 죽음의 풍경
이처럼 격한 이미지가 있는가 하면, 일상 속에서 마주친 동물의 죽음을 모노톤으로 그린 ‘자연사박물관’과 ‘모래바람-고비사막 가는 길’연작은 죽음과 맞닿아 있되, 불량배 사이에 불편하게 앉아있는 모범생 마냥 멋쩍고 어색한 인상이다. 죽음의 덧없음은 일진 광풍처럼 덮쳐오기도 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한 켜씩 쌓이는 먼지처럼 서서히 다가오기도 한다는 것일까.
한 사람의 작품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여러 경향의 작품이 혼재되어있어 다소 산만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아마 안창홍이 ‘컬렉션’하는 죽음의 이미지가 그만큼 다종다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죽음의 폭력성을 탐욕스럽게 그림 속에 집어삼키고 이미지로 맞장을 뜨는 그의 뚝심만은 변치 않았으나, 대상의 속성에 다가가는 방식의 선정성이 두드러진 것도 이전 작업과의 미묘한 차이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1천원. 자세한 문의는 02-736-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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