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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영혼과 육체, 그 씨줄과 날줄의 관계 - 박성태전

by 야옹서가 2002. 11. 29.

 Nov 29. 2002
| 12월 2일까지 인사동 공화랑 1, 2층에서 열리는 박성태의 5번째 개인전은 육체의 허물을 벗고 그림자처럼 떠도는 영혼을 형상화했다. 입양아, 무명 민주투사 등 격동의 한국현대사 속에 잊혀져간 사람들을 파편화된 신체오브제로 재현해온 박성태는, 이번 전시에서 얇은 철망을 재료로 사용해 씨줄과 날줄이 서로 얽히듯 영과 육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육체를 빠져나온 영혼’이란 모티브는 5·18민중항쟁의 본산인 작가의 고향 광주에 대한 기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민중항쟁 과정에서 희생돼 차가운 땅속에 묻힌 이름 없는 시민들의 죽음은 작가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고, 시대정신을 담은 작품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박성태가 보여준 기존의 종이캐스팅이나 도자설치작업이 암매장된 희생자들을 연상시키면서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것에 비해, 이번 전시는 보다 절제된 시선으로 육체와 영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파편화된 인체와 떠도는 영혼
철망이란 재료가 영구성과는 거리가 먼 존재임에도 조각 재료로 사용된 것은, 가공이나 운반이 손쉽다는 제작상의 편의성 외에도 그림자나 영혼과 같은 비물질적인 대상을 형상화하기에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박성태의 철망 조각은 관람자의 시점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갖게되는데, 철망의 굴곡을 따라 반사되는 빛과 음영의 움직임이 다채로운 시각적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체는 손과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철망의 형태를 조금씩 변형시키며 요철을 만들어나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체모형을 만들고 그 위에 철망을 찍어누른 것으로 착각할 만큼 사실적인 것이 놀랍다. 게다가 금방이라도 핏줄이 꿈틀거릴 듯한 형상 사이사이에 평면적인 형상을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놓아 기묘한 인상을 준다.

공간 위를 드로잉하는 빛과 그림자
 예컨대 ‘untitled’(2002)연작에서는, 사람의 형상을 한 흐늘거리는 그림자들이 힘겨운 몸짓으로 벽에서 빠져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자가 몸의 절반을 의지하고 있는 원통형 철망기둥은 관을 닮았으며, 다리가 없거나 머리 위가 날아가는 등 신체 일부가 훼손되고 반투명한 몸은 구천을 떠도는 혼령을 연상시킨다. 철망의 투과성으로 인해 인체 형상과 그 그림자가 겹쳐지면서, 평면으로만 존재하는 2차원의 세계와 현실세계를 표상하는 3차원적 세계가 교차한다. 그의 철망조각들이 멈춰있는 것 같으면서도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렇듯 서로 다른 차원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조명의 작용으로 더욱 강화된다.

철망의 씨줄과 날줄이 얽히듯 서로 교차되는 이질적인 성질은 공간 설정에서도 드러난다. 전시장 1층이 낮의 공간이라면 블랙라이트로 어둠을 만들고 철망에 형광물질을 발라 어둠 속의 빛을 표현한 2층은 밤의 공간, 가수면의 상태다. 특히 2층의 전시공간 한쪽 벽은 형광물질을 바른 실로 격자무늬 배경을 만들어 형상 속의 씨줄과 날줄을 확대시켜 보여주며 강조한다. 동양화를 전공했음에도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작가로 활동하는 박성태의 행보를 감지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자세한 문의는 02-737-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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