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22. 2002 | 손가락의 둘레를 따라 기분 좋게 밀착되는 둥글고 서늘한 물체-완전함과 영원불멸을 상징하는 반지는 인간이 만들어낸 장신구 중 신체와 가장 밀착돼있는 것 중 하나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절대권력을 대표하는 인장으로 쓰였던 반지는 교회를 통해 세속화되면서 배우자에 대한 귀속의 증거로 탈바꿈해, 오늘날에는 사랑의 징표로 그 의미를 이어오고 있다. 이밖에도 16세기 경 유럽에서 유행한 포지 링(posy ring)처럼 여러 가지 경구를 반지에 새겨 신의의 상징으로 몸에 지니거나, 반지 속에 공간을 만들어 향료, 약, 죽은 이의 유골 등을 담기도 했는데, 이러한 반지의 용도와 형태를 짚다보면 작은 문화사를 완성할 수 있을 정도다.
손가락 위의 작은 예술-반지의 매력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5층에서 11월 26일까지 열리는 ‘700개의 언약-반지특별전’에서는 이렇듯 파란만장한 반지상징의 변천사만큼이나 다양하게 창조된 반지들을 살펴볼 수 있다. 가나아트, 국민대학교 대학원 공동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국민대 대학원 금속공예그룹 알케미스츠(Alchemists) 회원 50명과 기성 장신구작가 38명 등이 참여해 총 700점의 반지를 출품했다.
전시된 반지에 응용된 형태를 보다보면 재미있는 시도가 종종 눈에 띈다. 이야깃거리를 담은 조그마한 오브제를 부착해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전시된 작품 중 대부분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출품작가들은 보편적인 반지의 형태라고 할 만한 원형 고리에 살을 붙여 생물유기체적인 형태로 변형시키거나 독특한 장식을 붙이는가하면, 반지의 외형을 원형이 아닌 사각형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예컨대 신혜림이 제작한 ‘아버지’는 원과 사각형의 조합을 기본으로 반지의 형태를 잡고, 정은, 금부, 나무 등 따뜻하고 차가운 속성의 재료를 어울러 눈길을 끌었다. 반지 장식의 모서리에 작은 구멍을 내고 식물열매를 꽂을 수 있게 만들어 마치 꽃병같은 느낌도 준다.
평범한 재료에서 보석을 발굴하는 현대의 연금술사들
이들이 반지를 만드는 데 사용한 재료는 정은, 금부, 다이아몬드, 수정, 상아, 칠보 등 전통적인 장신구 재료에 머물지 않는다. 색색가지 플라스틱, 나뭇조각, 자석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재료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재치를 보면 ‘연금술사들’이란 의미의 그룹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 예를 들어 전인강이 제작한 ‘언약’은 은으로 고리 부분을 만들고 보석 대신 시계부속, 큐빅을 이용해 장식했는데, 시계의 상징성과 1부터 31까지의 숫자를 새긴 원판이 맞물려 영원한 약속의 순간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전시를 기획한 국민대학교 전용일 교수는 전시서문에서 “작가들이 반지라는 공동의 유산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작가들간의 나눔은 또 다른 대량생산자들과의 나눔으로 이어져 우리의 장신구문화에 작지만 의미 있는 파동을 만들 것”이라며 본 전시의 의의를 평가했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무료. 전시된 모든 반지는 판매 가능하며, 추가 주문제작도 할 수 있다. 자세한 문의는 02-73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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