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22. 2002 | 흔히 하는 말로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두 사람이 하나가 될 때, 그것도 문화적 성장배경이 판이할 수밖에 없는 국제결혼부부의 경우에는 결혼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변수들의 조합이 한층 복잡다단해지기 마련이다. 이 변수들의 조합이 더할 나위 없는 찰떡궁합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살아가면서 축적되는 미묘한 차이가 그 사랑을 흔들어놓기도 한다.
관훈동 대안공간 풀에서 11월 26일까지 열리는 김옥선의 세 번째 개인전‘해피 투게더’는 국제결혼 부부들이 경험하는 모호한 차이의 순간들을 포착한 사진전시다. 작가 자신도 독일인 남편과 결혼해 9년째 결혼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만큼, 이번 전시는 자전적 성격이 짙다.
국제결혼부부의 주거공간으로 시선을 옮기긴 했지만, 김옥선이 여전히 주목하는 것은 일상 속 여성의 삶이다. ‘빨래 앞에 선 혜자’(1999), ‘싱크대 앞에 선 명지’(1999)와 같이 일상공간 속에서 평범한 알몸을 드러낸 여성을 가감 없이 담은‘WOMAN IN A ROOM’연작이 그랬듯.
일상적 풍경 속에 축적되는 의문의 층위
비록 간접적이긴 하지만 타인의 집을 들여다보는 것은 분명 자극적인 경험이다. 게다가 국제결혼이라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 만큼 관람자는 살 떨리는 애정표현이 넘치는 부부의 모습을 기대하거나, 인테리어잡지를 옮겨놓은 듯한 서구 풍 실내를 연상하기 쉽지만, 김옥선의 사진은 이런 기대를 순식간에 깨버린다. 웃음기 없는 심드렁한 표정의 부부와 산만해 보이는 실내풍경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인상은 사진 속에 등장하는 부부의 포즈에서 기인한다. 프레임의 주변으로 밀려난 외국인 남편들의 모습이 마치 하나의 소품처럼 주거공간 속에 묻혀버리는 반면, 한국인 부인들은 저마다 정면을 바라보며 관람자를 향해 발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침묵 속에서 응시하는 그녀들의 눈에는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며 자문했던 것처럼 “국제결혼부부들이 안고 살아가는 차이의 문제는 문화적인 것(cultural gap)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것(personal gap)인가”와 같은 질문이 스며들어있다.
국제결혼부부-문화적 차이인가, 개인적 차이인가
예컨대 ‘옥선과 랄프’(2002)에서 똑같이 생긴 의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은 옥선이 가지런히 다리를 오므리고 의자에 웅크리듯 앉는 데 반해, 랄프는 지하철 중년 아저씨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두 다리를 한껏 쩍 벌리고 앉아있다. 이러한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인가, 아니면 개인적 성향의 차이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국가에서 성장한 문화적 차이인가. 혹은 이런저런 차이가 실재하지도 않는데, 단순한 일상에 과다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가. 김옥선의 사진은, 이런 여러 가지 의문의 층위를 생산하면서 관람자가 생각의 미로에 빠지게끔 만든다.
어쨌든 어떤 이유로든 상호간의 차이가 존재하고, 그 차이를 좁혀나가는 과정이 다른 부부들의 경우보다 복잡한 국제결혼부부들에게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미결과제로 남는다. “당신은 행복한가”라고 묻는 답변에 “가끔은…”이라고 답하는 현순처럼, 혹은 다음과 같은 작가의 독백처럼.
“제도와 상식의 편견에 맞서 또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 문화와 관습의 차이를 넘어서, 언어와 사고의 차이를 넘어서 이룬 그들만의 성(城), 결혼. 나는 정말 궁금하다. 그들은 그 안에서 행복한가? Are you happy together? ”
이번 전시의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11시∼오후 6시 30분까지다. 문의전화는 02-735-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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