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06. 2002 |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는 세계적인 사진가 아라키 노부요시의 작품세계를 국내 최초로 소개하는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전을 개최한다. 선정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던 킨바쿠(結縛) 연작을 비롯해 1982년부터 7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틈틈이 찍은 ‘소설 서울’, 폴라로이드로 찍은 서울과 도쿄의 하늘사진 1천 장을 모은 천공(天空), 컬러와 흑백으로 각각 촬영한 음식사진 ‘식정(食情)’, ‘A의 일기(A's Diary from Jan.1-Aug 15, 2002)’, 영상물‘아라키네마-서울환상곡’등 1천5백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사진의 관음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눈
아라키의 카메라가 채집하는 이미지는 그가 감각적으로 체험한 모든 사물을 대상으로 한다. 한국을 방문해 처음 맛본 낙지의 쫄깃한 감촉, 사랑하던 아내가 암으로 죽는 순간과 꽃봉오리가 만개하는 순간이 교차할 때-그 생과 사의 혼재가 가져다준 경이로움, 기록하지 않으면 흘러가 버릴 일상에 이르기까지 그 폭은 광대하다. 아라키의 작품세계를 하나의 특징으로 구분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198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변화해온 서울과 도쿄의 풍경을 180점의 사진 속에 담은 다큐멘터리적 사진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는 한국과 일본을 가로지르는 풍속사라 할 만하다.
피사체를 사로잡고 인화지 속에 영원히 가두는 사진의 속성을, 아라키는 능수능란하게 활용한다. 특히 그의 작품 중 관음증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자극하는 킨바쿠(結縛) 연작은 단연 눈길을 끈다. 카메라는 작가의 손을 대신해 피학적 자극에 몸을 내맡긴 여성을 집요하게 더듬는다. 쇠사슬을 목에 감은 알몸의 여인, 교복차림으로 묶인 채 허공에 매달린 소녀, 사지를 벌리고 식탁 위에 누운 자세로 결박당한 여인 등은 은밀한 성적 환타지를 생산한다. 관람자의 시선은 여체를 묶은 끈 사이로 삐져 나오는 살의 꿈틀거림을 집요하게 뒤쫓지만, 그러나 이 기이한 풍경을 보고있으면 흥분보다 싸늘함이 먼저 엄습한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죽은 사물처럼 존재하기 때문이다.
에로토스-일상 속에 혼재하는 생의 욕망과 죽음의 그림자
성욕, 식욕 등으로 표현되는 생의 욕망과 죽음에 대한 그림자가 교차하는 사진은 아라키가 설명하는 ‘에로토스’로 집약된다. 삶의 욕구를 상징하는 에로스와 죽음에의 지향을 의미하는 타나토스가 혼재된 에로토스는, 역설적으로 사람보다 사물을 다룰 때 보다 실감나게 다가온다. 예컨대 링 스트로보를 사용한 접사촬영으로 반짝이는 음식의 질감을 강조한 ‘식정(食情)’연작은 작가의 아내 요코의 죽음을 기점으로 컬러와 흑백으로 나뉜다. 거대하게 확대된 음식사진은 자극적인 색감에 젖어있지만, 단순히 흑백사진으로 바뀐 것만으로 그 이미지는 부패된 것 같은 느낌으로 돌변한다. ‘일상 속에 혼재하는 삶과 죽음의 순간’이라는 모티브는 여러 종류의 꽃을 컬러사진과 흑백사진으로 촬영해 대조한 다른 연작에서도 발견되는 부분이다.
아라키는 1964년 천진난만한 동네 어린이를 찍은 ‘사친’으로 타이요(太陽)상을 수상하며 24세에 사진가로 화려한 데뷔를 했지만, 자신이 진정 사진을 시작한 것은 사랑하는 아내 요코를 찍었던 순간부터라고 설명한다. 아라키에게 사진이란 ‘사랑하는 대상을 찍는 것’이며, 그가 강조하는 사진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젖어있음’이다. 어떤 이는 ‘젖어있음’이란 말속에서 은밀한 흥분을 느끼고, 어떤 이는 소멸된 것을 향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슬픔을 느낀다. 그의 사진이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동시에 아우르는 것처럼. 다큐멘터리적 사진으로부터 포르노사진에 준하는 이미지까지 광대한 갈래로 뻗어나가는 그의 사진을 어떤 시각으로 해독할지는 또다시 관람자의 몫으로 남는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일반 4000원, 학생 2000원. 관람시간은 오전 11시∼오후 9시(공휴일 7시)이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전화 02-2020-2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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