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13. 2002 | 관훈동에 위치한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는 12월 18일까지 민중예술가 오윤(1946∼1986) 회고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고 직전인 1986년 열린 첫 개인전과 1996년의 10주기 기념전에 이어 그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총 30여 점의 출품작 속에는 판화뿐 아니라 드로잉, 조각 등도 포함돼 오윤의 다채로운 활동영역을 살펴볼 수 있다.
1979년 창립된 ‘현실과 발언’동인으로 활동하며 민중미술 1세대로 활약한 오윤은 서구현대미술의 도입과 변주에 골몰했던 미술계 흐름에서 한 발 물러나 현실참여 쪽으로 눈을 돌렸다. 판화의 대중적 속성을 활용해 출판물 작업과 연계하면서 그의 작업은 풀빛판화시선 표지화를 비롯해 일련의 삽화, 걸개그림 등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됐다. 40세의 나이로 요절했으면서도 오윤이 가장 대중적인 민중미술작가로 기억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예술의 현실참여 앞장선 민중예술가 오윤
날카로운 칼맛을 살려 파내려 간 굵고 힘찬 먹선과 대개 흑백으로 마무리된 소박한 색채 속에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우러나온 사람냄새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텁텁한 막걸리 한잔에 목을 축이고 젓가락장단에 맞춰 어깨춤을 추며 시름을 달래는 노동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가슴을 풀어헤친 채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아낙, 보충수업 10년에 시들어버린 중년교사의 얼굴, 학교 가는 소녀와 논밭으로 일나가는 소녀가 교차하는 현실…오윤은 그늘에 가려진 기층민중의 삶이 어떤 식으로 일궈져왔는지를 이렇듯 적나라하게 기록한다. 그의 칼은 어떤 펜보다 예리하고 강했다.
예를 들어 살풀이춤을 연상시키는 ‘아라리요’(1985)는 오윤 판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마와 뺨에 숙명처럼 깊이 패인 주름살, 검게 그을려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광대뼈, 마디 굵은 거친 손은 신산스러운 삶을 증거한다. 우러나는 신명에 몸을 맡긴 아낙의 손이 무거운 공기를 천천히 가르면서 어느새 신발 한 짝이 벗겨지고 앞섶이 열려 젖가슴이 드러나도, 눈을 지그시 감은 아낙은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헐벗은 몸 속에서 소용돌이치며 솟아나는 격정이 아낙의 몸을 일으켜 세우고, 춤을 추게 하고, 삶을 이어가게 만든다. 오윤이 판화 속에 담고자 했던 것은 그 뜨거운 기운이 아니었을까.
판화뿐 아니라 드로잉, 조각 등 다양한 활동영역 소개
판화 외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오윤의 조각작업을 소개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오윤은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조각가 출신이지만, 판화작업으로 선회한 탓에 그의 조각은 빛을 보지 못했다. 테라코타로 제작한 인물상과 나무부조 등 투박하고 단순한 형태로 처리한 인물상들은 판화 속 인물들을 그대로 현실세계 속에 옮겨온 듯하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1천원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다. 문의전화 02-7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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