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20. 2002 |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은 2003년 3월 30일까지 화가 장-프랑수아 밀레의 작품세계를 전반적으로 조망하는 ‘밀레의 여정’전을 개최한다. 토마 앙리 미술관 소장작을 중심으로 루브르, 오르세, 랭스 미술관 등지에 분산 소장된 밀레의 작품을 모아 국내 최초로 소개한 이번 전시에서는 ‘밀레 이전’, ‘바르비종에서의 밀레’, ‘밀레 이후’의 3부로 나뉘어 총 1백50여 점이 전시된다.
연대기 순으로 전시된 밀레의 작품은 유화, 판화, 데생 등 약 80점. 여기에 밀레의 스승 뒤 무쉘, 들라로슈의 작품서부터 다비드, 샤르댕, 루소, 피사로, 고흐 등 신고전주의∼후기인상주의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 70여 점이 밀레 작품사이사이에 섞여 소개된다. 이로써 밀레와 영향을 주고받은 작가들의 흔적을 밀레 작품의 변천사에 맞춰 파악할 수 있게끔 했다.
숨은 밀레의 흔적 되짚어 가는 전시
이번 전시는 유명한 밀레의 바르비종 시절 작품들 외에,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덜 알려진 밀레의 활동영역에서부터 되짚는다. 바르비종 시기의 대표작이 농촌의 평범한 일상을 순간 속에 정지시킨 듯한 정밀함과 삶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보여준다면, 작품활동 초기인 쉘부르·파리 시기의 작품들은 농민화가로 불린 밀레의 작품세계가 형성되기 이전 탁월한 초상화가로 활동한 밀레의 솜씨를 부각시킨다.
예컨대 밀레가 남긴 초상화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실내복을 입은 폴린느 오노의 초상’(1843∼44년)에서는 아직 농민화가 밀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폐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첫 아내를 그린 이 그림은 당시 유행했던 반측면 자세를 취한 신고전주의 풍 초상화를 보여준다. 이 시기 아내의 모습을 비롯해 밀레가 그려낸 일련의 초상화 속에는 도시민의 모습이 담겨있지만, 그 속에는 밀레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고요함의 정서가 배어있다.
초상화작가로 승승장구했던 밀레가 농민의 삶에 눈길을 돌린 것은 1849년 바르비종으로 이주한 후부터다. 도시에서 미술수업을 받기는 했으나 그 자신도 시골 태생으로 농촌 정서에 친숙함을 느꼈던 밀레는 마을 곳곳에서 마주치는 농민의 일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꼼꼼히 담아냈다. 밀레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삭줍기’, ‘만종’ 등은 이번 전시에 누락됐지만, 어린 아들을 오줌 누이는 어머니와 이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누나의 모습이 따뜻한 색감으로 묘사된 ‘어머니와 아들’(1857), 걸인이 먹을 빵을 어린 딸에게 쥐어주며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아낙을 그린 ‘자비심’(1858∼59년) 등은 이번 전시의 백미다.
사실주의적 화풍 전반을 가로지르는 고요함과 경건함
특히 회화와 더불어 일련의 데생과 판화 속에 등장하는 농촌의 일과는 그 묘사의 생생함에 감탄하게 된다. 씨 뿌리는 남자, 쟁기에 기댄 농부 등은 물론, 장식 없는 머릿수건을 쓰고 투박한 신을 신은 여인들도 바느질, 양모 고르기, 우유 젓기 등 다양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지만, 이들은 힘겨운 현실에 대한 반발보다 조용히 자신의 삶을 인내하며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밖에 동시대의 바르비종 파 작가들과 밀레 이후 그의 영향을 받은 여러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되는데, 그 중에서도 스스로를 밀레의 후계자라고 밝히며 밀레를 추앙했던 고흐는 특별히 전시공간을 따로 마련해 ‘씨 뿌리는 사람’, ‘낮잠’, ‘별이 빛나는 밤’ 등 밀레의 원작과 고흐의 모사작 20여 점을 비교해 눈길을 끈다. 다만 원작이 아닌 사진복제프린트로 재현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는다.
본 전시의 입장료는 일반 8천원, 청소년 6천원, 어린이 4천원. 화∼금요일 오후 2시에 도슨트의 전시설명시간이 있고, 매주 월요일, 1월 1일∼2일은 휴관한다. 문의전화는 02-2124-8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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