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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사진과 회화의 불온한 만남-강홍구+배준성전

by 야옹서가 2002. 12. 20.

 Dec 20. 2002
| 모노톤으로 단조롭게 장식된 버거킹 매장, 테이블에 앉아 대화에 몰두하는 젊은이들 사이로 뜬금없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우뚝 서서 관람자 쪽을 흘깃 돌아본다. 흑백사진 위에서 그녀가 입은 드레스만 유난히 푸른빛으로 빛난다. 얇은 투명비닐 위에 그려진 드레스는 여자의 몸 위에 살짝 걸쳐진 상태인데, 비닐 뒤에 뭐가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슬쩍 들춰보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드러난다. 그녀가 발 딛고 선 바닥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이음매가 드러날 만큼 어설프게 합성한 것이다.

진실처럼 보이는 것’과 ‘진실’의 차이 
이처럼 기이한 장면은 12월 29일까지 서교동 갤러리 아티누스에서 열리는 ‘PLUS : 강홍구+배준성’전에서 재차 반복된다. 일상적인 풍경을 디지털이미지로 전환하고 이를 합성하는 과정에서 기이함을 연출하는 강홍구, 그리고 사진과 회화의 느슨한 결합을 시도해온 배준성은 공동작품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다음, 또다시 흩어져 서로의 방식으로 사실과 허구의 교묘한 접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업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들은 사진을 매개로 해서 겉으로 보이는 현상과 그 이면에 숨은 현상의 괴리를 재치 있게 고발한다. 예를 들면 배준성에게 있어 사진·회화의 결합과 분리는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관음적 욕구의 힘을 자극함으로써 제대로 기능한다. 그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층위로 구성돼있다. 전라의 인물을 흑백사진으로 촬영하고, 그림 위에 투명비닐 또는 투명아크릴을 덧붙여 앵그르, 다비드 등의 작품에 등장하는 서구풍 의상을 그려 넣음으로써 모델의 벗은 몸을 가려 사진과 회화의 영역을 구분한다.

배준성의 작품에서 관람자의 시선을 끄는 가장 큰 장치는 화려한 복식으로 몸을 가리는 것이다. 흑백사진으로 촬영된 모델의 몸과 컬러풀한 의상, 사진과 그림의 공존이라는 이중의 부조화 때문에, 몸을 가리는 행위는 역으로 가려진 옷 뒤의 벗은 몸을 강조한다. 이 두 층위 사이의 괴리감이 크면 클 수록, 관람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의상 뒤의 숨겨진 모습으로 향하게 된다. 다소 짓궂은 장난기가 엿보이는 그의 작업은 겉으로 보이는 현실이 전부는 아니며,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은 따로 있음을 직설화법으로 설파한다.

사진으로 담보한 진실의 알리바이를 깨부순다
 반면 스스로를 ‘B급 작가’라고 일컫는 강홍구의 화법은 보다 교묘하고 조심스럽다. 그의 사진은 별 생경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담고 있다. 그러나 표준 인화지 비율인 3 : 2를 넘어 가로로 길게 늘여 찍은 그의 사진들은 단순한 파노라마사진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 곳곳에 미세한 이음매가 발견되며, 그 이음매가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중첩과 데자뷔 현상이 일어난다. 이는 컴퓨터그래픽 툴을 이용해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였기 때문이다. 실존하는 것 같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알리바이는 고스란히 남은 중첩된 자국에서 비롯된다.

사진이란 매체는 흔히 진실의 알리바이처럼 해석되기 쉽지만, 강홍구와 배준성의 작업은 그러한 통념의 빈틈을 가뿐하게 파고 들어간다. 현대사회에서 절대적인 진실이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이 두 작가가 펼쳐 보이는 사진과 회화의 불온한 만남은 아직도 실험중이다.

본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자세한 문의전화는 02-326-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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