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제품 | 전시 | 공연

바람의 다양한 해석과 그 변용-타이틀매치:바람풍 바람끼전

by 야옹서가 2002. 12. 13.

 Dec 13. 2002
| 서교동 쌈지스페이스 전관에서 12월 25일까지 ‘이승택 vs 이윰 타이틀매치 : 바람풍 바람끼’전이 열린다. 올해부터 매년 연례기획전으로 열리게 될 제1회‘타이틀매치’전은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20세기를 풍미한 원로 작가와 21세기 한국미술의 지형도를 재편할 젊은 작가의 2인전 형식으로 개최된다.

첫 번째 원로작가로 선정된 이승택은 1950년대부터 연기, 불, 바람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대상을 조각의 범주에서 다루며 실험적 퍼포먼스와 대지미술 등 전방위에서 활동해온 작가. 신진작가 측에서는 ‘빨간 블라우스’,‘리빙 스컬프처’등 톡톡 튀는 조각, 비디오, 퍼포먼스 등을 선보이며 신세대미술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이윰이 나서 흥미진진한 한판 대결을 벌인다.

바람의 두 가지 의미-물리적인 바람과 영적인 기운
 이승택과 이윰이 대결 주제로 선택한 것은 바람. 똑같은 단어 ‘바람’이지만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천양지차로 달라진다는 것은, 그들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바람’은 자연현상일 수도 있고, 소원이나 희망을 뜻할 수도 있으며, 바람기와 같이 인간의 특정한 기질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로개념미술가 이승택이 선택한 바람은 물리적인 바람이다. 그는 현실세계에 존재하지만 손에 잡히지는 않는 무형의 현상들을 조각의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50미터에 달하는 긴 천의 양끝을 붙잡고 바람에 나부끼게 하거나, 생나무에 헝겊을 묶어 펄럭이게 한 상태를 조각이라 명명한 이승택의 작품은 한국미술계의 이단아로 그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단 넓은 공간과 바람이 있어야만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에, 실제로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들은 예전 작품의 재료를 재배치한 것에 지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념적 예술작품은 시·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전시장 내에 재현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 관계로, 행위현장과 동등한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작업과정사진과 드로잉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편 청년작가 이윰은 바람을 영적인 기운으로 해석한 8채널 사운드 설치작업과 영상작업을 선보인다. 기(氣), 혹은 끼라고도 이야기하는 그 기운을 이윰은 ‘루아흐’라고 명명한다. 히브리어로 바람, 호흡, 영을 뜻하는 루아흐를 추구하면서, 내면에 가득 찬 영성의 움직임을 방언 같은 흥얼거림으로 뽑아내는 이윰의 모습은 낯설다. 전시기획자로서의 면모를 선보였던 ‘금단의 열매’전(2001)에서 종교적 감화의 흔적이 언뜻 비추기는 했으나, 남성과 여성, 기계와 인간, 가벼움과 무거움이 교차하는 키치적 이미지로 눈길을 끌었던 만큼, 예전의 이윰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작업은 극적 전환이라 할 만큼 생경하게 보인다.

매너리즘의 유혹 경계하는 작가정신의 실험무대
 평론가들에게 어느 정도 자신의 작품세계가 인지되면, 매너리즘에 빠져 자기복제적 작품을 양산하게 되는 상황은 어떤 예술가라 할지라도 한번쯤 경험해보기 마련이다. 기존 작품이 호평을 받을수록 그 유혹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작가의 타이틀 매치전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재평가를 반복하는 작가정신의 용광로와 같다.

쌈지스페이스관장 김홍희는 전시서문에서 “동 기획전은 원로대가의 미술사적, 창조적 업적에 대한 경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현재진행형의 작업을 화단의 미래를 걸머진 신진 청년작가와 한 선상에 놓음으로써 세대간의 인터액션을 조장하고 그로 인한 창조의 시너지를 기대한다는 취지를 갖는다”며 본 전시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자세한 문의는 02-02-3142-169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