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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정신의학과 미술의 만남 - 싸이코드라마전

by 야옹서가 2003. 2. 14.

 Feb. 14. 2003
| 당신 앞에 빈 의자가 하나 놓여있다고 치자. 거기에는 당신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 앉아있다. 그는 당신의 주변사람일 수도 있지만, 혹은 갈등상황에 놓인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을 천천히 떠올려보자. 그가 누구인지를 떠올리면서, 그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상상해보자.

이것은 싸이코드라마의 기법 중 하나인 빈 의자 기법이다. 단순한 형태의 빈 의자에 자신이나 타인을 투사시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자아가 당면한 문제나 심리상태에 대해 진단할 수 있도록 돕는 상담기법이다. 이 빈 의자 기법의 세트를 전시장으로 가져오면 어떻게 될까? 빈 의자는 상담의 적절한 도구가 되는 동시에 작은 감방을 재현해놓은 듯한 설치미술로 변하고, 나아가 드라마적 요소가 담긴 퍼포먼스 형태로 발전된다.

관음증, 강박증, 환각, 자아분석 등의 미술적 변용 거쳐
 신문로 성곡미술관 별관에서 2월 28일까지 열리는 싸이코드라마전은 이처럼 현대미술과 정신의학의 결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4기 성곡미술관 인턴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리는 본 전시는 인턴 큐레이터 5명이 공동기획한 것으로, 총 15팀의 작가가 참여해 ‘마술상점’, ‘이중자아’, ‘빈 의자’등 세 가지 소주제 속에 자신의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된 작품만으로는 세 가지 소주제 중 어떤 분야에 속하는지 알아보기 쉽지 않을 만큼 다분히 자의적인 분류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굳이 분류하기보다 참여작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흥미롭다. 예컨대 엄혁용의 ‘관음증-다이어리 엿보기’는 회사원, 대학생, 예비신부 등 서로 다른 계층의 여성 사회구성원들이 작성한 다이어리를 거대하게 확대하고 이를 유리에 에칭해 병풍처럼 세우거나, 확대복사해 벽에 붙이는 방식으로 재현하고, 작은 책상과 의자를 마련해 관람객이 실물의 다이어리를 만지면서 타인에 대한 관음증을 자극하는 통로를 열어놨다. 

한편 강박증을 표현한 작품도 있다. 2층 전시장 구석, 흰색으로 페인트칠한 방의 3면에 자신의 이름을 빽빽하게 적는 행위를 통해 자아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름과 자기 자신의 관계를 안과 밖의 경계에 대입시켜 탐구하는 한진수의 ‘일 혹은 정의 또는 비움’이 그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죽을 때까지 무한 증식하는 숫자를 깨알같이 써 내려간다는 로만 오팔카도 어쩌면 강박증에 빠진 작가의 한 예가 아닐지 의심하게 된다.

이밖에 사물을 비틀어 길게 늘임으로써 공간을 일그러뜨려 놓은 듯한 환각을 유발하는 이환권의 조각, 또 겉으로 드러나는 자아를 영상으로 표현하고, 내면 속으로 침잠해 가는 자아를 조각작품으로 대조시킨 천성명의 설치조각은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지는 시각적 수확 중 하나다. 반면 안창홍, 정복수, 성능경 등 중진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기보다, 오래 전에 선보였던 기존 발표작 중 하나를 다시 가져와 신선한 느낌이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간의 내재적 사유를 시각화된 코드로 풀어내는 작업
성곡미술관 인턴큐레이터 일동은 전시서문에서 “닫혀진 내면의 잠재심리를 표현하는 데 그 효과가 인정되고 있는 싸이코드라마의 집단 심리극을 번안해서 사용함으로써 관람객 스스로가 자신과 타자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제시하겠다. 즉, 싸이코 드라마가 가지는 즉흥성, 현재성, 창조성을 기반으로 인간의 내재적 사유를 시각화된 코드를 이용해 끌어낼 것”이라며 전시의 의의를 밝혔다.

본 전시의 부대행사로 2월 22일 오후5시 성곡미술관 별관 3층에서 용인정신병원 김수동 진료부장이 진행하는 싸이코드라마가 열릴 예정이다. 관람료는 초·중·고생 1천원, 일반 2천원이며 월요일은 휴관. 본 전시의 입장권으로 3월 30일까지 성곡미술관 본관에서 열리는 자화상 전시‘아이.유.어스(i.you.us)’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문의전화 02-737-7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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