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07. 2003 | 1989년 타계한 고암 이응노의 유작을 대거 소장중인 이응노미술관은 3월 20일까지 ‘이응노 디자인 작품전 I , 세브르 도자기’전을 개최한다. 2000년 개관이래 본 미술관에서는 이응노의 회화를 중심으로 4차례 기획전을 개최한 바 있지만, 그의 디자인 작품을 모아 집중조명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응노의 디자인 작품 78점을 비롯해 18세기 유럽 명품도자기의 산실 세브르 도자기에서 의뢰받아 제작한 도자기 6점이 소개된다. 특히 본 전시와 함께 이응노의 작품 외에 1970년대 세브르 도자기에서 작업한 자우키, 장 아르프, 알렉산더 칼더, 피에르 알레진스키 등 현대미술작가의 도자작품 21점도 함께 전시된다.
조형적 요소로 도입된 콘텍스트
문자추상으로 대표되는 이응노 작품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대상은 크게 가족과 새, 문자의 세 가지다. 한국 전래민화와 문자도에서 발견되는 소박한 미와 추상성을 이어받은 그의 문자추상은 디자인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흥미로운 조형요소다. 그러한 문자추상은 글과 그림이 한 몸처럼 동등한 대우를 받았던 옛 문인화에서 유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이 이미 1960∼70년대에 서양화단에서도 관심을 끌었던 것은, 기호학의 부상과 함께 동양 서체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확산됐던 시대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응노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문자디자인적 요소는 그의 연작 제목이기도 한 ‘콘텍스트’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전통적 텍스트 구조에서 자유로운 해체와 조합을 거쳐 추상화된 그의 그림은 구조와 구조가 연결될 때 또 다른 형상과 의미를 생산한다. 이응노가 염두에 둔 회화의 콘텍스트 구조는 일종의 패턴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도자기 표면을 뒤덮고 있는 형상들은 때로 그물처럼, 때로는 숲처럼, 때로는 하늘을 무한히 뒤덮은 새떼들처럼 보인다. 몸을 기대고 부비며 인간피라미드를 쌓아가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있어야만 비로소 그 힘이 증폭되는 이응노의 디자인 요소는 사람 인(人)이라는 글자의 유래를 연상하게끔 한다. 혼자서는 비틀거리고 설 수도 없는 존재 하나가 또 다른 존재를 만나, 서로 기대고 하나가 되어 온전하게 설 수 있는 그 모습 말이다.
현대미술을 빛낸 작가들 세브르 도자기에 담아
도자디자인을 위한 이응노의 여러 작품과 더불어 눈길을 끄는 것은 함께 열리고 있는 세브르 도자기전시다. 18세기 유럽 명품도자기의 산실 세브르 도자기는 20세기에 접어들어 세르주 고띠에의 도자공장장 취임을 계기로 순수예술분야의 작가들을 적극 유치했다. 단순히 ‘접시에 그린 그림’이 아니라 ‘접시 형태로 만들어진 그림’이란 논지로 제작된 세브르 도자기는 순수예술과 디자인의 행복한 만남을 보여준다.
당시 참여한 작가만 해도 동양적 화풍의 이응노, 자우키는 물론 야코브 아감, 세르주 폴리아코프, 알렉산더 칼더, 에띠엔느 아쥬, 비에라 다 실바, 쇠포르, 루트르 등을 꼽을 수 있으며, 뒤늦게 합류한 피오리니, 장 아르프 등의 작품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상당하다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부대행사로 3월 12일(수) 오후 2시 30분부터 ‘동북아 문화권에서의 새의 상징성’ 강연이 우실하 전 중국 요녕대 한국학 교수의 진행으로 열릴 예정이다. 전시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일반 3천원, 단체 및 아동 2천원. 문의전화 02-3217-5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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