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14. 2003 |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1전시실에서는 5월 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이스라엘 아인해러드 미술관 공동주최로 ‘중국현대목판화 : 혁명에서 개방까지, 1945∼1998’전을 연다. 자오옌니안(趙延年), 황페이모(黃丕謨), 왕치(王琦), 쉬빙(徐氷) 등 중국현대판화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전시에서는 연화(年畵:설날 그림)형식의 판화, 반문맹자를 위한 연환화(連環畵) 등 다양한 중국 목판화 101점을 소개한다. 특히 중국현대판화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루쉰의 소설《아큐정전(阿Q正傳)》을 판화로 옮긴 자오옌니안(趙延年)의 판화연작 60점 중 4점도 소개돼 이채롭다.
전통민중예술의 토대 위에 세워진 중국현대판화
이번 전시의 부제에 밝힌 연도에서도 미뤄 짐작할 수 있듯, 본 전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1945)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1949)을 기점으로 급격히 변화해온 중국의 시대상을 담았다. 피비린내 물씬 풍기는 1960∼70년대 문화혁명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우른 출품작들은, 사실적인 묘사를 기반으로 하면서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삼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선동적인 구호를 외치는 작품부터, 트랙터와 발전소가 가동되는 모습, 장대하게 늘어선 전신주와 같이 언뜻 보기엔 평범한 풍경 속에 공산화 이후 사회변화에 대한 긍정적 묘사까지, 그 진폭이 다양하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판화라고 해서 전통을 완전히 파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양식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전시 도입부에 주로 소개된 일련의 연화(年畵:설날 그림)들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물질적 풍요와 만사형통을 의미하는 길상도안으로 꾸민 연화(年畵)는 기복(祈福)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품목이었는데, 이 연화의 도상학적 특성을 응용해 만든 현대적 연화들은 직설적 방식으로 표현의도를 명확히 드러낸다.
예컨대 타오화우 연화공방의 ‘예쁜 옷보다 무장을(不愛紅裝武裝)’이란 작품에서는 활동적인 바지차림의 두 여성이 총을 들고 전투적인 자세로 바다 한 가운데 버티고 서서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그림에서 ‘전족을 하고 규방 밖을 나가지 않으며, 첩을 투기하면서 남편의 사랑을 얻는데 급급했던’ 순종적 중국여성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공산사회 이념과 변화하는 시대상 담아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판화형식으로 짧은 글과 그림이 곁들여져 단편만화책을 연상시키는 연환화(連環畵)를 예로 들 수 있다. 1930년대부터 중국현대판화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작가 루쉰(魯迅)이 가장 효과적인 민중계몽의 수단으로 여겼던 그림양식이 바로 연환화였다. 루쉰은 대량제작이 가능하고 글과 그림이 섞여있는 연환화를 반문맹자들이 많았던 민중에게 가장 적합한 매체라고 믿었고, 주변 작가들에게도 연환화의 제작을 독려했다. 그가 옌안(延安)에 1940년대 들어 설립한 루쉰예술학원은 판화예술의 중심지로 기능하기도 했다.
철모르는 어린아이들조차 지주들을 죽이거나 미국인을 타도하는 연극을 하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의 자리에 공산사회를 예찬하는 상징적 도상들이 들어서는 판화 속 모습은 씁쓸하지만 지난 시절의 이념이 얼마나 강력하게 민중을 지배하고자 했는지 되짚어볼 수 있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본 전시의 부대행사로 중국현대목판화작가들의 판화제작과정을 담은 비디오가 전시장 내에서 상시 상영된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성인 19세∼65세까지 2천원, 18세 이하 1천원. 월요일 휴관. 함께 열리는 다른 전시로 신소장품 2002전(제2전시실 및 중앙홀, ∼4월 15일), 작고사진가 임응식 특별전(제6전시실, ∼7월 27일)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문의전화는 02-2188-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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