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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동물의 생로병사 속에서 인간을 본다 - ‘동물우화집’전

by 야옹서가 2003. 4. 18.

Apr. 18. 2003
| 우화나 동화를 보면 유난히 동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컨대 이솝우화 중 ‘여우와 신포도’편에 등장하는 여우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흔히 빠지기 쉬운 자기합리화의 전형으로 인용된다. 한국 동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해님달님’의 호랑이는 죄 없는 엄마를 잡아먹는가 하면, 아이들에게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교활한 모습이다. 때로는 더없이 순박하고 솔직하지만, 때로는 잔인하고 비열한 동물들은, 실은 인간의 내면에 숨은 성향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대상물이다.

삶과 죽음의 굴레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반영해
 이러한 동물들의 모습을 이야기 대신 사진 속에 담은 흥미로운 전시가 열린다.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6월 22일까지 열리는 ‘동물우화집’ 사진전이 그것이다. 본 전시에서는 샌디 스커글런드, 짐 다인, 윌리엄 웨그먼, 사라 문, 그레고리 크루슨, 김중만, 양전종 등 총 36명의 작가가 8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번잡한 삶의 굴레 속에서 아옹다옹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쏙 빼 닮은 동물들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수탉과 암탉, 병아리를 나란히 줄지어 세우고 마치 대가족이 기념사진 찍듯 촬영한 양전종의 작품이나, 인간의 결혼식 장면을 모방해 자신의 애견에게 결혼의상을 입혀 화려하게 치장하고 사진을 찍은 윌리엄 웨그먼의 작품은 지극히 풍자적이다. 특히 웨그먼은 개의 몸에 온갖 치장을 하고 인간의 행동양식을 흉내내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특유의 유머감각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환경보호에 대한 목소리도 어우러져
유쾌하게만 보이는 삶의 이면에 자리잡은 죽음을 보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특히 동물의 죽음은 다양한 형식으로 접근돼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예를 들어 은은한 빛을 받으며 고요히 잠든 벌을 화면 한 가운데 배치한 크리스토퍼 테일러의 흑백사진에서 정밀한 침묵의 순간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죽음이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아니라 너무나도 평온한 듯 느껴진다. 한편 포르말린 액에 담겨 표본이 된 동물을 찍은 파트릭 바이메트르그랑은 존재의 죽음을 가장 확실하면서도 섬뜩한 방법으로 보여준다.

 또한 똑같이 박제된 새를 다루더라도, 작가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며 사진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예컨대 윤정미가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 사이에 놓인 경계선을 자연사박물관의 박제된 새 사진으로 슬쩍 건드린다면, 에릭 듀커츠는 박제된 새의 엑스레이를 촬영함으로써 보이는 것과 실재하는 것의 차이를 고발하는 식이다.

대림미술관 측은 전시서문에서 “동물우화집, 사진전은 현대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며, 동물들이 멸종하고, 우리 지구마저도 파괴된 이후 닥쳐올 자연의 죽음과 그 부활을 암시하는 전시다. 이 전시를 관람하며 오늘날 인간과 동물,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를 재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본 전시의 입장료는 성인 4천원, 소인 2천원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다(매주 월요일 휴관). 홈페이지 내의 할인쿠폰을 인쇄해 가져가면 50% 할인된 입장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전화 02-720-0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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