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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유리조각으로 태어난 그리스 신화 - ‘메두사의 눈’전

by 야옹서가 2003. 4. 11.

 Apr. 11. 2003 | 부드럽게 유영하는 해파리의 모습을 보면, 십중팔구 그 유연함과 우아함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얇은 베일처럼 하늘거리는 투명한 몸은 물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이렇듯 멀리서 바라볼 때는 매혹적이기까지 하지만, 바다수영을 하다 만나는 해파리 떼는 소름끼치는 공포의 대상이다. 방금 전까지 천사의 날개처럼 하느작거리던 촉수가 몸에 닿으면 순식간에 죽음의 춤을 추는 사자의 낫으로 변한다. 쏘인 살갗이 따끔한 정도로 그치기도 하지만, 독성이 강한 몇몇 종류에 쏘이면 1분 이내에 사망할 수도 있다.

메두사를 연상시키는 해파리를 작품 모티브로
 평창동 갤러리세줄 1, 2층 전시장에서 4월 27일까지 열리는 미셀 블롱델의 설치조각전 ‘메두사의 눈’전은 해파리의 모습에서 그리스 신화의 괴물 메두사(Medusa)를 연상해 제작한 유리조각을 선보인다. 원래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메두사는 포세이돈과 신전에서 바람을 피우다 아테나 신의 저주를 받아 자신과 눈을 마주친 모든 대상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됐는데, 블롱델은 바다에서 해파리를 만난 사람들이 독의 위험 때문에 돌로 변하듯 경악하게 되는 상태, 즉 ‘메두제(Meduses)’가 되는데 착안해 메두사의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려했다. 수백 마리의 뱀이 꿈틀대는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해파리의 촉수와 유사할 뿐 아니라, 한때 지녔던 아름다움이 파괴적인 성향으로 전환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채로운 빛깔로 제작된 해파리 형상의 유리조각은 생명의 원천을 응결시킨 원형질처럼 보인다. 솟아오르는 물기둥이 그대로 얼어붙은 듯한 형상과 빛깔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신화 속 메두사와 페르세우스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보다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투명하고 영롱한 빛을 오롯이 담은 유리조각의 아름다움은 쉽게 깨지기 쉽다는 점에서 불안정한 이 세계와 닮아있다. 특히 한번 깨지면 원상태로의 복원이 어렵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고대신화를 미래의 거울삼아
블롱델은 이러한 메두사 신화와 해파리의 생물적 특성, 유리의 재료적 특질을 혼합한 후 해파리의 형태로 재현해 현대사회의 재앙을 암시했다. 유니콘의 뿔처럼 생긴 페르세우스의 검과 메두사의 머리(해파리) 12개는 각각 광택 있는 검은색 받침대에 놓였다. 받침대는 관람자의 얼굴을 거울처럼 반사하는데, 이는 페르세우스의 생명을 지켰던 거울방패처럼, 예술이 암울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바닥에 놓인 물방울 모양의 유리조각 역시 메두사의 목이 떨어진 후 세상을 정화하듯 흩날린 황금빗방울을 상징한다. 블롱델이 해파리, 즉 메두사의 모습을 빌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듯하다. “인간이 세상을 파괴한다. 그러나 그 세상을 다시 일구는 것도 인간의 몫이다.”

 아름다움과 불길함을 동시에 지닌 해파리가 상징하는 메시지는 2층의 영상설치에서 두드러진다. 불길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채 서 있는 해파리 떼는 획일화로 점철된 현대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불안정한 인간의 내면을 거울처럼 비춘다. 베니스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된 자유로운 형태의 해파리와 달리, 한국 내 도자기공장에 백자 재질로 주문 생산해 똑같은 모습을 한 것이 대조적이다. 몰개성한 인간의 모습을 닮은 해파리 떼는 전시실 3면에서 내쏘는 빔 프로젝터의 영상 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무료다. 자세한 문의전화는 02-391-9171.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영은미술관(031-761-0137)에서 전시기간 중 미셀 블롱델의 또 다른 작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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