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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언제 어디서 불러도 기운나는 그 이름, 어머니

by 야옹서가 2003. 5. 16.
 
May 16. 2003 | 충정로에 위치한 문화일보갤러리에서는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예술작품 속에 묘사된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보여주는 ‘기운나는 이름, 어머니’ 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윤석남, 강미선, 유근택, 이상일, 김혜련, 김영준, 정소연, 김은주, 홍지연, 안진우 등 열 명의 작가가 참여해 회화, 조각, 사진, 설치, 영상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펼쳐냈다.

작가들이 어머니를 보는 시선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희생과 사랑으로 일관한 삶을 살았던 어머니, 며느리와 경쟁하는 심리로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는 어머니, 생명의 창조자이자 양육자로서의 여성,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한 추모의식 등 여러 각도에서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펼쳐진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각각의 작품마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 미세하게 달라, 관람자로 하여금 저마다 다른 어머니에 얽힌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억 속에 묻혀있는 어머니의 다른 얼굴
 예컨대 똑같은 어머니의 벗은 몸이지만, 이상일의 사진연작 ‘어머니의 땅’(1997)과, 안진우의 인체조각 ‘아들의 여자’(2000)에서 관찰되는 이미지는 대조적이다. 훌렁 벗은 어머니의 상반신만 촬영한 이상일의 흑백사진은 오랜 수유와 노화로 인해 탄력을 잃고 축 늘어진 젖가슴, 골이 깊게 파인 얼굴의 주름살과 거칠어진 머리칼이 고즈넉한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안진우의 인체조각은 아줌마 파마로 불리는 촌스러운 곱슬머리를 하고 신혼여행 때 들었던 반짝이 가방을 낀 채 당당하게 알몸을 드러낸 어머니의 모습에서 나이 들어서도 며느리에게 얕보이지 않고 아들에게는 여전히 멋진 여자로 보이고 싶은 여성의 심리를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이밖에도 자식이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사랑 담은 뜨끈한 밥을 먹이고픈 어머니 마음이 고봉 가득 넘치는 쌀밥 속에 표현된 윤석남의 조각 ‘붉은 밥’, 모태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원형 안에 4B연필로 선을 수없이 겹치고 겹쳐 마치 철판 같은 느낌이 날 때까지 깊고 짙은 면으로 만들어낸 김은주의 ‘무제’(2003)도 인상깊다.

문학과 예술의 만남 속에 그려진 어머니의 초상
 작품과 더불어 이번 전시를 빛내는 요소는 단촐한 시화집을 연상케 하는 전시도록이다. 갤러리만 휙 돌아보고 간다면 전시의 절반만을 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서문으로 수록된 이어령씨의 수필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는 수록된 글 중의 백미로, 열 한 살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이 애잔하게 그려진다. 이밖에 기형도, 김혜순, 주디스 햄스메이어, 엘제 라스커-쉴러, 함동선 등의 글과 함께 강미선, 홍지윤 작가가 직접 쓴 시도 선보인다.

특히 전시도록 중 김영준의 설치작품 사진과 나란히 놓인 심순덕의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읽으면 누구나 한번쯤 지나쳐왔을 철딱서니 없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엄마의 의무’라는 명목아래 반복된 어머니의 희생이 왜 당연하게 느껴졌는지, 새삼 죄송스럽고 한편으로 감사한 마음이 솟아난다.

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하루 종일 밭에서 힘들게 일해도/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외할머니 보고싶다/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로/아!/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무료이며, 개관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다. 전시기간 중에는 휴관일 없이 매일 개관한다. 문의전화 02-3701-5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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